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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군통합

동·서독 군통합 반세기를 상호 반목과 대립 속에서 공존했던 동· 서독 통일의 최우선 과제는 양국의 군을 무리없이 통합해내는 일이었다. 그것은 군이야말로 물리적 힘을 소유한 실체로서 순탄한 군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양국간 통일의 의미가 모두 상실되기 때문이다. 군통합의 특징 동서독 군통합의 특징은 독일 통일과 관련된 미묘한 대외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전쟁의 패배와 히틀러의 무조건 항복으로 상실된 주권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국가가 독자적으로 군통합을 주도할 수 없었다. 콜 총리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주창해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낸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이 문제해결의 핵심인물로 파악하고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모스크바를..

독일분단극복 2005.10.17

내독성

내독성, 분단문제 전담 내독성은 1949년 서독정부 수립 직후 분단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서였다. 기본법 전문에 명시된 분단극복을 그 사명으로 하고 대동독정책 담당부서였던 연방총리실과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대동독정책을 집행했던 기관이었다. 연방총리실이 대동독정책의 원칙과 동독과의 조정업무를 전담했다고 한다면 내독성은 그에 대한 세부사항을 주관해왔다. 이에 따라 내독성은 우선 동독 내 고립된 서베를린을 살리고 자유의 도시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연합국들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만들었다. 1948년 6월 24일 소련과 동독에 의한 ‘베를린 봉쇄’가 취해지자 미국을 중심으로 소위 ‘루프트브뤼케(Luftbruecke)’ 라고 하는 항공공급망 전략으로 대응해 이를 무력화시켰다..

독일분단극복 2005.10.16

슈타지총수 에리히 밀케

동독 건국에서 몰락까지 - 에리히 밀케(Erich Mielke) 에리히 밀케는 청년시절 공산당 시위현장에서 경찰간부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 기소돼 소련으로 도주, 모스크바 레닌대학을 다니며 군사정치학을 전공했다. 스페인, 벨기에 등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공산당활동을 전개했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로서 친소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밀케는 위성국가 건설에 혈안이었던 소련과 긴밀한 협조 하에 동독 국가건설의 선봉에 섰다. 전후 동독지역을 점령 통치한 소련은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밀케와 같은 친소파들을 국가기관의 요직에 앉히고자 했다. 인민경찰을 창설했고 경찰 내에 슈타지의 핵심근간이 된 경찰 제5국도 만들었다. 제5국의 임무는 체제 저항세력을 감시하고 인민들의 단체행동을 통제관리해..

독일분단극복 200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