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다시보기 35

[독일통일 왜곡, 여전하다]

정권이 바뀌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후에도 독일통일에 대한 왜곡이 여전하다. "서독은 브란트 동방정책 이후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진보정권은 물론 보수정권도 화해협력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평화통일을 달성했다"는 주장인데 사실과 맞지 않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진보학자는 물론 보수학자도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하고있어 우려스럽다.서독은 동독과 협력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 인권,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원칙을 준수했다. 동독이 소련제 핵미사일 SS-20을 배치하자 미국산 퍼싱II를 서독에 배치할 것을 처음 경고했던 사람은 사민당(SPD)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총리였으며 동독이 경고를 무시하자 실제로 퍼싱II 700여 기를 서독에 배치했던 사람은 기민련(CD..

슈타지 형사소추

통일 후 서독은 동독공산독재 정권에 대한 청산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처벌은 국내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매우 경미했다. 청산작업 1호인 슈타지(Stasi)의 경우 검찰이 고발한 251명 중 87명만이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다수가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으며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정규요원 1명과 비정규 요원 2명이었다. 정규요원 1명은 1983년 베를린 “Maison de France”에 폭발물을 설치해 테러혐의를 받던 인물이고 비정규요원 2명은 동독 탈출을 도운 조력자 Wolfgang Welsch에 대해 3차례 암살을 시도한 요원과 동독 탈출자 Siegfried Schulze에 대해 3차례 암살을 시도한 요원들이다. 3명 모두 슈타지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

로젠홀츠 데이터

분단시절 베를린은 각국 스파이들이 정보 전쟁터였다. 동독 STASI는 물론 소련 KGB, 미국 CIA 사이 암투는 치열했다. KGB 요원으로 파견됐던 푸틴은 STASI 신분증까지 소유하며 정보전에 투입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동독주민들은 동베를린 슈타지 본부를 점령하고 비밀문서(총 800만 건) 지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핵심자료들은 이미 파기된 상태였다. 파기된 문서 분량은 16km에 달했다. 이 때 동독의 해외스파이 정보가 담긴 최종본 로젠홀츠 데이터도 파기된 바 있다. (참고: 독일통일 통일한국, 청산작업1호 슈타지) 통일이 되고 미국 CIA가 로젠홀츠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KGB 요원이 1992년 7만5천 달러를 받고 데이터를 CIA에 넘긴 것이다. 381개..

독일통일 30년, 1인당 GDP 변화

올해는 독일통일 33년 주년의 해, 지난 30년 서독과 동독은 경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나? 1인당 GDP 기준으로 변화된 추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독, 통일 1년차인 1991년 22,797 유로에서 통일 29년차인 2019년 43,499 유로로 약 2배 가량 성장한 반면 동독의 경우, 통일 1년차 7,395 유로에서 29년차 30,027 유로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단순히 1인당 GDP만을 비교하면 동서독에 불평등이 여전한 것 같지만 성장률을 고려하면 동서독 차이가 서서히 좁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통일 후 독일의 1인당 GDP, 실업률, 평등지수 등 여러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독일통일 초기 우리나라 소위 전문가들의 평가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알게된다. 천문학적 통일비용, 동서독 갈등과 반..

[독일통일 및 유럽 체제전환 미래센터 Zukunftszentrum für Deutsche Einheit und Europäische Transformation]

우리는 독일통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통일과 관련된 지식에는 오류가 없는가? 1990년 독일통일 후, 이념적으로 대립된 정권이 교차해 들어서며 상당히 많은 정보들이 왜곡된 채 회자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 10년을 거치며 曲學阿世, 曲言阿世 등 권력에 아부하는 학자와 언론의 독일통일 왜곡이 심각했다. “독일통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 “독일통일은 우리의 모델이 아니다” 등과 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정권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학자, 전문가, 정치인들이 통일된 독일을 다녀갔는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왜곡된 주장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득했던 통일의 소망들을 허물어버렸다는데 있다. 남북 공존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이와..

동독 자동살인기(Todesautomat)

동독은 1971년 서독 행 탈출자를 저지하기 위해 국경지대에 자동발사장치(Selbstschussanlage) 71,000개를 설치했다. 그 후 국경을 넘는 일은 자살행위와 같았고 탈출자 수도 급감했다. 이런 와중에 1976년 4월 1일 밤 당시 32세 청년 미하엘 가르텐슐레거(Michael Grartenschlaeger)가 비밀리에 자동발사장치 하나를 해체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제공했고 슈피겔은 이 장치를 세밀히 분석해 보도하며 자동살인기(Todesautomat)라고 불렀다. 그 동안 자동발사장치 자체를 부인해 왔던 호네커 정권의 잔혹성이 전세계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가르텐슐레거는 4월 24일 밤 두 번째 자동발사장치를 해체해 서베를린 박물관에 팔았다. 1982년 연방총리에 오른 헬무트 콜은 1..

동서독 기본합의서 49주년

[동서독 기본합의서 49주년] 49년 전 오늘, 1972년 12월 21일 동서독 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산물로 양독이 과거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독립성, 자율성, 인권존중 및 주권국으로서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동독 슈타지는 기본합의서 협상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모든 협상의 내용이 보고서로 만들어졌고 수장 에리히 밀케는 협상의 과정을 “힘든 계급투쟁”(Harter Klassenkampf)으로 정의했다. 기본합의서가 초래할 잠재적 위협을 파악해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하는 명령도 내려졌다. 국제법상 주권국가로 인정받는 동독의 최대 목표가 실현되는 듯 했다. 하지만 서독 내 야당인 기민/기사련과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거셌다. 동서독 주민을 고립시키는 베를린 장벽이..

통일비용과 북한재건의 길

통일비용과 북한재건의 길 “통일은 어렵다. 비용도 많이 들고 통일 후 남북갈등으로 삶이 더 어렵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교류 협력을 활성화해 신뢰를 쌓은 후 통일해야 비용이 적게 든다.” 이것이 독일통일을 통해 얻은 교훈이며 한국식 결론이다. 모두가 구더기 이야기다. 장 담근 이야기는 빠져 있다. 독일이 독일 통일 27년 만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어 유럽을 리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독일의 GDP가 유럽 전체의 40%에 육박하고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주도할 정도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여성 정치인으로 벌써 6번째 선정된 바 있다. 통일 전 서베를린을 방문하는 것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