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상품 구매운동

박상봉 박사 2006. 10. 9. 09:43

동독상품 구매운동

- 서독 전경련이 주도가 되어 동독구매 솔선수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해외자본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이었다. 공산주의의 사상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자본에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연결해 선전해온 결과로 반 자본에 대한 성향이 주민들의 몸에 배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이런 반자본적 성향은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개혁이 불어오고 동유럽에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경쟁적으로 가속화되었던 80년대 후반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 사회주의권의 이런 기우는 중국의 경제발전과 월남, 체코, 헝가리 등 체제전환 과정에서 해외자본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직접 체험한 이후에 비로소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구 공산권 국가들은 나서서 해외자본을 국내에 유치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독에도 해외자본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이런 성향은 통일 초기 동독경제 재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고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악용하기도 했다. 최근 동독지역 주선거에서 과거 공산당(SED) 후신인 민사당(PDS)이 기민련(CDU)에 이어 제2당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알려진 대로 통일 후 독일인에게 부여되었던 가장 큰 임무는 피폐해진 동독경제를 이른 시일 내에 재건해내는 일이었다. 이런 임무를 띠고 트로이한트(신탁관리청)가 설립되었고 구 동독 인민재산에 대한 사유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사유재산의 불허로 당에 집중되어 관리되던 각종 재산들을 민간에게 환원해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일은 초기부터 엄청난 저항을 불러왔고 1994년 트로이한트가 공식적인 임무를 종결할 때까지 언론의 초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트로이한트에 관한 찬반을 둘러싸고 국민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 부류는 찬성론자들이다. 이들은 트로이한트를 하나의 국가경제를 역사상 가장 빨리 민영화하는 데 성공한 기관으로 평가했다. 둘째 부류는 트로이한트의 지나친 관료주의적 성향으로 투자자들에게 각종 부과사항을 제시함으로써 잠재 투자자들을 떠나가게 했을 뿐 아니라 경쟁이 불가능한 기업을 퇴출시키는 데 시기를 놓쳤다는 주장이었다. 정치가들의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을 질타하는 부류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부류는 트로이한트가 동독의 경제적 가치와 잠재력을 송두리째 뿌리뽑아 동독의 존재이유와 동독인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았다고 비판하였다. 통일 후 동독재건 과정에서 이런 세 가지 부류의 주장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언론보도의 머릿기사가 되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전경련과 같은 독일기업연합(BDI)과 트로이한트가 공동으로 소위 ‘동독상품 구매운동’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의 사장을 역임했던 칼 한(Carl Hahn), 함부르크 시장을 지낸 클라우스 폰 도나니(Klaus von Dohnany), 당시 독일기업연합 루돌프 폰 바르텐베르그(Ludolf von Wartenberg) 회장 그리고 트로이한트 대표였던 비르기트 브로이엘(Birgit Breuel)이 공동대표가 되었다.

이 운동의 핵심은 가능한 한 동독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자는 운동이었다. 사유화가 진행되며 품질과 서비스가 열악한 동독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외면으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남아있는 동독경제가 뿌리째 뽑힐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이 일에 총 75개의 주요 서독기업들이 동참했고 92년 설립 첫해부터 90억 마르크, 95년에는 250억 마르크의 구매실적을 올렸다.

IUED

 

       


◇1991년 4월 30일 동독경제의 상징인 동독 차 트라반트(Trabant)가 마지막으로 출고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동독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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