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평등 속의 불평등

박상봉 박사 2006. 9. 25. 12:32
 

평등 속의 불평등

- 탈출이유는 평범한 삶 속에 있었다


동독을 붕괴를 이끈 1989년말 대규모 탈출에 대한 원인을 두고 동독 공산집권 세력 간에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했다. 제국주의적 시각과 실용적 시각이었다.

호네커를 비롯한 핵심 지도층은 서독 제국주의자들의 전면적인 프로파간다(흑색선전)로 사상이 허약한 동독인들이 동요해 탈출하게 됐다는 판단이었다. 대다수의 탈출자가 이런 제국주의적 공격의 희생자가 되었고 이 사건으로 독일 땅에서 서독의 제국주의자들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다고 선전하기 바빴다. 그들이 평화적인 조약을 파괴하고 국제법을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이 동독 건국 40주년을 계기로 대중매체를 동원한 대대적인 캠패인을 전개해 사회주의적 이상이 허구라는 의혹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평화를 깨고 있으며 세계의 문제에 대한 전인류적 관심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독 사회주의는 대화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협력을 통해 제기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간다고 천명했다.

“시대가 정치적 이성과 휴머니즘에 대한 책임을 확고히 해 반혁명적 공격을 막아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이상을 재확인하자고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석(이념대결적)과는 달리 슈타지 실무자들은 동독 탈출의 원인을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서 파악했다. 슈타지의 보고서에는 탈출자의 대부분은 열악한 개인환경과 삶의 조건, 만성적인 결핍상태로부터 동독 사회의 문제점을 찾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독이나 서베를린의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이 동독인으로 하여금 동독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과거에는 정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했던 사회보장과 사회적 안전망 등 사회주의 장점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나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성적인 경제 약화로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과거의 삶이 여러 영역에서 현재 보다 나았다고 고백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피로를 느끼며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보다 활동적으로 사회발전에 참여해왔던 사람들에게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서독의 자본주의 사회가 더욱 역동적이고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준다는 주민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슈타지 보고서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탈출이유는 다음과 같다.

▲생필품 부족 ▲불충분한 서비스 ▲의료 시스템 부재 ▲국내외 여행제한 ▲열악한 노동조건 ▲생산공정의 차질 ▲임금·봉급 등 보상제도의 미비 ▲관료주의적 행태 ▲국민에 대한 권위주의 ▲미디어의 왜곡

이렇듯 동독 탈출은 지극히 평범한 이유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불편함, 관료들의 권위주의, 국민 위에 군림하는 태도 등이 조국을 등지게 한 이유들이었다. 물론 외화를 소유하고 있는 일부 계층들은 이런 평범한 어려움과는 무관했다. 신선한 야채, 생필품은 물론이고 고급 소비재까지도 인터숍이나 외화상점에서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배계층과 일반 서민과의 괴리는 점점 더 벌어져 갔다. 더욱이 소련, 폴란드, 헝가리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개혁과 개방의 물결은 사회주의 이상이 허구임을 증언해주었고 동요하는 동독인들을 국경으로 내몰았다.


동독의 사례는 국민이 조국을 등지는 현상은 또 다른 허구로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IUED

 

                       

 


◇1961년 8월 15일, 베를린 장벽건축 3일 째 당시 동독 국경수비대였던 19세의 콘라드 슈만(Conrad Schumann)이 철조망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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