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의 지휘벙커

박상봉 박사 2006. 9. 13. 09:24
 

동독의 지휘벙커

- 핵폭탄에도 끄떡없이 설계


통일 전 동독에는 안보기관의 벙커들이 전국에 산재했다. 전시에 국가를 지휘할 목적으로 베를린 북부 프렌덴(Prenden) 지역에 국가지휘벙커가 있었고 그 주변 지역에 통신지하벙커, 슈타지 지휘벙커, 국방부 지휘벙커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국가지휘벙커는 에리히 호네커와 17명의 국가안보협의회 위원들의 전시 지휘통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에리히 밀케의 슈타지는 베를린 근교에 지휘벙커와 남부 지역에 2개의 지부벙커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국방부는 하르네코프(Harnekop)에 지휘벙커를 두고 있었고 동독 인민군은 작센 州 죌리하우(Soellichau)에 본부벙커와 작센 안할트 州 할버슈타트에 비밀벙커를 소유하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州 하르네코프(Harnekop)에 위치했던 동독 국방부 지휘벙커는 총 1억6,000만 마르크의 비용을 들여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2만㎥ 콘크리트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것은 동베를린 最高의 텔레비전 타워의 크기에 달하는 양이다. 벙커내부에는 고급 식당이 갖추어져 신선한 음식을 즉석에서 요리할 수 있었고 지하 바는 고급 의자, 램프 등을 갖추고 장군들을 맞았다.


특히 호네커를 비롯한 핵심 군사지휘부가 전시를 대비해 건축한 프렌덴(Prenden) 지휘벙커는 동독 최대규모의 지하벙커로 ‘특수 건축물 5001’이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프렌덴 근교에 은밀하게 건축되었던 벙커는 외부에서는 좀처럼 눈치챌 수 없이 허름했지만 벙커 내부는 가장 완벽한 기술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벙커 내부는 지하로 연결된 200m의 터널을 통과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었다. 전시 지휘본부가 들어서게 되는 벙커 내부는 에리히 호네커, 17명의 국방위원과 500명의 핵심요원들이 완벽하게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벙커는 7m의 시멘트 벽과 철판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캡슐과 같았고 2차 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보다도 더 강한 핵폭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핵폭탄이 벙커에 떨어져도 내부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졌다.


지하 3층으로 만들어진 벙커는 총 170개의 방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 밖에도 서재, 응접실, 휴게실들을 갖추어 별 다른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게다가 24개의 창고, 물탱크, 기름탱크, 수술실과 같은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내부에 전기실, 통신실, 보일러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고 호네커의 부부침실과 고급 욕저가 달린 목욕탕들이 있었다. 벙커 크기는 9만6,000㎡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외부와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공중에 매달리도록 설계한 컨테이너에는 어떠한 외부공격에도 끄떡없이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직경 68mm의 철끈이 이를 지탱하고 있었고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는 완충기술을 갖춘 설비였다.


이런 철저한 시설을 갖추고 있던 동독이었지만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IUED

 

               

◇ 동독 지휘벙커의 내부. 분단시절 동독의 주요 벙커는 10여개에 달하고 있다(좌) 벙커 내 호네커의 대리석 욕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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