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 주군 소련군 철수

박상봉 박사 2006. 12. 5. 10:00

 

동독 주둔 소련군 철수

- 철수 소련군을 위한 주택 4만5천동 건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동서독 통일이 가시화되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3개국과 소련의 독일영토 내 군대는 더 이상 주둔할 명분을 잃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독일정부는 각국 정부와 주둔군의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했고 독일 영토로부터 완전 철수할 때까지의 일정과 조건을 규정해야 했다.

서방 3개국은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독일에 주둔할 것을 결의하고 소련군이 철군한 다음 나토 파견국의 법적 지위에 관해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문제가 됐던 소련군의 철수도 독일정부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예상보다 빨리 제반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독소 양국정부는 1990년 10월 18일 동독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의 철수에 관한 이양협정을 체결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합의했다.

첫째, 소련군은 1994년 말까지 독일에서 완전 철수한다.

둘째, 철군은 군병력과 군장비 일체를 포함한다.

셋째,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연합훈련은 독일영토에서 중단된다.

넷째, 과도기간 중 소련군의 훈련과 군사작전은 주둔지역의 훈련장소로 제한한다.

다섯째, 동독 내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던 토지(23만1천 ha 내 부동산 1,026건)는 철군과 동시에 즉시 독일정부에 이양된다.

여섯째, 철군 때까지 독일영토 내에서는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곱째, 소련군에 고용되어 있던 2,000명에서 2,500명에 달하는 동독인은 향후 독일의 노동법과 사회법의 적용을 받는다.

 

특히 독일정부가 소련에 제공할 막대한 재정지원은 소련군 철수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4년 말 소련군이 완전 철수할 때까지 총 120억 마르크를 소련정부에 지불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금액은 협정체결 이후 철수시기까지 소련군의 주둔비용, 철수비용 그리고 철수한 소련군의 정착비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동독에서 철수할 소련군과 그 가족을 위한 주택건설 비용이 78억 마르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 돈으로 계획한 3만6,000동을 1994년 말까지 완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재원을 통해 주택 9,000동과 사회복지시설, 주택건설 콤비나트 2개와 건설자재 생산공장도 지어주었다. 귀환해 새로운 직업을 선택해야 할 군인들을 위한 직업훈련비용으로 2억 마르크, 소련에 대한 무이자 차관도 30억 마르크에 달했다. 이외에도 추가로 1992년 12월 5.5억 마르크의 소련군의 재정착 지원금을 제공했다.

 

이렇듯 독일정부는 통일에 대한 반대급부로 막대한 금액을 제공해 소련군이 아무런 분쟁이나 갈등 없이 통일 후에도 일정기간 주둔할 수 있었고 당초 계획보다 빠른 1994년 8월 31일을 기해 완전 철수하게 되었다. 또한 이런 재정적 지원을 통해 귀환병력과 가족들이 구 소련국가(CIS)에서 재정착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서방 3개국의 주둔군은 소련군이 완전 철수한 8일 후인 1994년 9월 8일 베를린을 떠났고 이제 통일된 독일의 국방은 나토 군사동맹을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IUED

 

                  

 

◇통일과 함께 동독에서 철수하는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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