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재건

독일 트로이한트(신탁관리청)의 임무

박상봉 박사 2006. 5. 23. 09:31
 

독일 트로이한트(신탁관리청)의 임무


동독 개혁공산주의자 모드로브 정부 하에서 입법된 트로이한트 법에 근거해 설립된 트로이한트는 1990넌 10월 3일 동서독 통일조약이 발효됨과 동시에 연방재무부에 귀속되었다. 재무부를 중심으로 경제부, 노동부 등 관련 부서와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사유화에 박차를 가했다.

트로이한트가 핵심적으로 사유화를 추진한 대상은 동독 내의 기업이었다. 기업은 생산활동의 주체이자 고용의 주체로 동독의 경제재건과 통일된 국가의 경제적 활성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트로이한트는 기업의 사유화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추진했다.


첫째, 기업매각을 통한 사유화

기업의 사유화가 트로이한트의 핵심작업 임을 인지한 가운데 미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해 내는 일이 시급했다. 물론 동독의 전체 기업 중 우량기업은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이들 기업이야말로 동독경제 재건의 기틀을 세우는 초석들이다.

선진경영기법을 도입하고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잘 응용하는 것만으로도 국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기업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기업들은 비교적 용이하게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트로이한트가 추진한 사유화 전략의 최우선이다.


둘째, 회생가능한 기업에 대한 구제

기업매각에 대한 차선책이 회생가능한 기업을 구제하는 것이다. 당장 투자자를 발견할 수는 없더라도 전문경영인을 투입해 구조조정, 경영합리화를 추진해 기업정상화의 조건을 마련한 후 시장에 내놓는 사유화 전략이다.

이 경우 트로이한트의 역할은 ‘先 지원 - 경쟁력확보, 後 사유화 전략’이다.


셋째, 구제불능한 기업에 대한 청산

트로이한트의 임무 중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로 기업의 미래 경쟁력 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을 찾아내 과감히 청산시키는 일이다. 이 일은 대량실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추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불투명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정부담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동독 경제재건에 필요한 재정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단호한 의지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였다. 동독인의 노골적인 불만이 제기되고 사회가 불안한 가운데 정치인들은 차기 선거를 겨냥해 선심성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태였다. 트로이한트는 이상과 같은 3가지 원칙에 따라 동독의 인민재산들의 사유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총 2만3,500여 개 기업, 2만5천여 개의 도․소매업, 호텔, 식당, 약국, 서점, 극장 등이 처리되었을 뿐 아니라 농지 230만㏊와 토지 190만㏊ 등 부동산에 대한 사유화도 이루어졌다. 

이 밖에도 트로이한트는 여러 특수재산들을 사유화했다. 특수재산 중 대표적인 것은 통일조약 21조 1항의 규정에 따라 동독 행정부에 속했던 재산들로 특히 국가 안전기획부 슈타지가 관장했던 재산에 대한 관리와 처리였다. 동독 공산당 사회주의 통일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이 물려받은 재산과 그밖에 노동조합, 여성단체, 청년동맹 등과 같은 여러 대중조직들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에 대한 사유화도 트로이한트에 부여된 업무들이었다.


트로이한트의 임무가 이렇듯 다양화되는 가운데 구 동독지역이었던 브란덴부르크 주(州), 메클렌부르크 포어폼메른 주(州), 튀링겐 주(州), 작센 안할트 주(州), 작센 주(州) 등 신연방 5개주의 총리, 연방 재무부장관, 경제부장관 그리고 트로이한트의 임원들은 다음과 같은 세부지침을 만들어 트로이한트의 사유화 전략을 보강토록 했다. 


● 트로이한트는 구 체제에 속해있던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둔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해박한 메니저를 확보한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서독기업과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서독기업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한다.

향후 기업은 국제시장에 편입되어 타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생산활동의 유동성을 확보토록 하는 일이 절실하다. 즉 생산시설과 규모를 원할히 조정하는 기능을 확보해 내어 유동성을 기른다.

사유화는 대량실업을 동반한다. 따라서 기업활동을 장려해 고용을 촉진토록 해야 한다. 이런 인식 하에 트로이한트는 확보하고 있는 토지들을 필요할 경우 투자자들에 제공해 기업활동을 장려한다.


이 지침 속에는 사유화 작업과 함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대량실업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정치지도자들의 고뇌가 드리워져 있다. 무엇보다도 동독기업을 구제해낼 수 있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인식 하에 동독 신연방 5개 주는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간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트로이한트의 사유화가 기업청산에 신중을 기해 가능한 한 많은 기업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트로이한트의 사유화는 그 업무의 역사성과 질적․양적의 방대한 규모로 대량실업을 비롯한 사유화로 초래되는 부작용까지를 해결해내는 모든 조치들을 수용해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관계자들은 트로이한트의 업무의 본질인 사유화 자체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며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로 사유화 고유업무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실업 등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유화를 통한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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