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재건

트로이한트 설립배경

박상봉 박사 2006. 5. 17. 08:25
 

트로이한트 설립배경


트로이한트안슈탈트(Treuhandanstalt)는 한국어로 신탁관리청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줄여서 트로이한트로 통용되고 있다. 트로이한트는 동독의 최고 실력자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가 몰락한 후 에곤 크렌츠(Egon Krenz) 총서기 하에서 과도정부를 이끌던 한스 모드로브(Hans Modrow)에 의해서 1990년 3월 1일 설립되었다. 역사적 변화라고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동독의 인민재산을 관리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설립 당시만 해도 동독의 재산을 시장경제체제로 편입시킨다는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트로이한트가 설립되었지만 동독의 사통당(SED) 간부는 물론이고 트로이한트의 참모들도 스스로 변화의 주역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는 상황 속에서도 동독 공산세력들은 체제를 반세기동안 지탱해온 당 관리 하의 인민재산까지를 모두 포기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체제전환의 과정에 당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인민재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이 의도에 따라 당 핵심간부들이 트로이한트의 요직을 차지했다. 


동독주민들의 자유선거를 통해 모드로브의 후임으로 총리에 오른 로타 드메지어(Lothar de Maiziere) - 로타 드메지어는 동독의 변호사로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치러진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는 자유총선에 의한 최초의 총리이자 통일을 이루어낸 동독 마지막 총리였다. 통일 후 그는 서독 기민련(CDU)의 부총재가 되었다.- 도 이런 공산세력의 텃세를 꺾지 못하고 사통당 핵심세력들을 트로이한트 관리자로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 공산세력들이 저질러왔던 만행과 무능력이 드러나게 되고 체제전환의 과정을 구 공산세력에게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는 동독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어지자 서독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동독 내 개혁에 참여하게 되었다.


동독의 드메지어 정부는 동독경제 회복의 제1단계로 서독의 경화인 마르크화를 동독에 도입할 것을 결정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갔다. 서독과 화폐통합 및 경제․사회통합을 체결하고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과 풍요로움에 동참해 갔다. 통일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비효율적 계획경제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트로이한트의 임무도 이런 방향 속에서 보다 구체화되어 갔다.

이런 가운데 트로이한트는 서독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그 조직을 새롭게 정비해 나갔다. 그 결과 드메지어 총리는 인민회의를 소집해 다음과 같은 트로이한트의 임무를 확정할 수 있었다.


사유화를 통한 기업활동의 국가개입 포기

기업경쟁력의 자체확보


새로운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의 기업은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스스로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독의 인민의회가 동의한 셈이었다. 하지만 트로이한트가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며 제 모습을 찾게 된 것은 데트레프 카르스텐 로베더(Detlev Karsten Rohwedder)가 대표로 발탁되면서부터 였다.

헬무트 슈미트 총리 시절부터 경제분야에 깊숙이 관여해 왔던 로베더는 부실기업 관리에 관한 탁월한 능력의 보유자였다. 그는 ‘신속한 사유화’, ‘철저한 기업정상화’, ‘신중한 기업청산’의 세 가지 원칙을 내걸고 트로이한트를 이끌었다.


서독정부는 트로이한트를 동독경제 재건의 핵심인 사유화 담당기관으로 정하고 로베더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인민재산이라는 명목 하에 공산당이 관리하던 재산들이 트로이한트를 통해 인민들에게 환원되었고 이를 통해 시장경제의 발판이 구축되어 갔다.

다른 한편 트로이한트는 동독 공산세력들의 불만과 반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인민재산의 사회환원이라고 하지만 이는 공산당의 기반을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트로이한트의 초대 대표였던 로베더의 암살1)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로베더는 로베더는 1991년 4월 1일 그가 본격적으로 사유화 임무를 추진한 지 채 1년이 못되어 서독의 극좌단체이자 동독 슈타지의 은밀한 지원을 받아왔던 적군파(RAF)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 적군파(RAF)는 트로이한트 대표 로베더를 암살한 직후인 91년 4월 4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로베더의 암살은 RAF의 소행임을 밝혔다. 암살 동기에 대해 로베더 청장은 과거 20년 동안 서독의 정치와 경제의 주요 위치에서 일해왔고 이제 동독을 뿌리채 뽑아내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로베더 청장은 암살될 때까지 동독의 당 재산을 단호하게 민간에게 이양하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유화 작업을 강력히 추진했다 -


또한 사유화 작업은 재산의 효율적인 관리를 전제로 하고 있어 동독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브란덴부르크 주 힐데브란트 사회부 장관이 이런 동독사회의 불만을 대변했던 것이 언론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우리 또한 남북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북한경제를 성공적으로 재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통일도 희망보다는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동독경제 재건의 중추기관으로서의 트로이한트에 대한 세심한 조사와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어떠한 실책들이 있었는지 면밀히 검토해 보다 성공적인 북한경제 사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