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재건

북한체제전환의 핵심, 사유화

박상봉 박사 2006. 4. 15. 09:03
 

북한체제전환의 핵심, 사유화


남북경제통합의 핵심은 북한의 당에 소속된 기업, 토지, 부동산, 소․도매업, 기타 서비스업 등 인민재산을 민간에게 이양해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즉 성공적인 경제통합은 이런 사유화 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독일의 사유화 작업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떤 사유화 전략과 함께 보완책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사유화 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들의 성격과 해결책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을 독일이 추진했던 사유화 작업으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다.

사유화는 미래통일한국의 운명이 달린 문제이다. 그런 만큼 사유화와 관련되어 드러나는 부작용, 사회적 불안 등도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전체의 재산의 형태와 구조를 전환하는 것은 통일된 국가가 경제발전을 위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미래지향적인 과제인 것이다. 사유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보다는 이 작업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인식하고 사유화에 임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북한 사유화작업의 두 축


북한 사유화작업에 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원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냉철한 머리’로 대변되는 합리적 사고와 결정에 대한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유화가 초래하게 될 부작용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대처한다는 원칙이다.

전자가 통일한국의 체제를 택하고 국가운영 시스템의 틀을 만드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사유화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대량실업 등의 피해자들에게 민족애를 발휘해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일이다.


1) 냉철한 머리 : 경제질서, 체제선택의 문제

남북통일에 대해 여러 시각과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마는 통일의 경제적 차원이야말로 통일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통합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우리민족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 일에 대한 감상적 접근이나 적당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90년 독일이 극적으로 통일을 달성한 직후 한국으로부터 많은 통일관련 관계자들이 통일의 현장인 베를린을 방문하였다. 여러 방문단들 중에서 한번은 약50여명의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방문단이 베를린 자유대를 방문해 통일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세미나 주제 발표는 자유대 정치학과 바그너 교수가 맡았다. 그는 바로 얼마 전 통일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통일의 과정을 아주 현실감 있게 설명해 주었고 발표가 끝나자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동안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인식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미련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의 학자들이 사회주의의 이론적 결함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의 경험을 통해 이 사상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허구임에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통일을 이루어내야 할 우리사회 지식인들의 인식이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내용인 즉 중국사회가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순수했던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과거에는 밭에서 일하다가도 달리는 기차를 보면 일손을 멈추고 휴식을 즐기던 낭만이 있었으나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된 후부터 그러한 낭만과 여유는 모두 사라지고 있으니 과연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무작정한 전환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지적이었다. 이 지적에 대한 바그너 교수의 대답은 아주 명료했다. 답변인 즉, 바로 그와 같은 미적지근한 노동행위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오늘날과 같은 경제적 비효율성이 드러나 체제간의 우열이 판가름났다는 대답이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일러주고 있다. 하나는 통일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체제간 통합은 두 체제 중에 보다 나은 국가 시스템을 우선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과정은 마치 경제학적 기회비용과 같다. 즉,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통일한국이 택해야할 체제는 자유민주주의요, 시장경제체제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에서 지적한 내용 속에서 등장하는 생활의 여유니 낭만이니 하는 개념들에 대한 추상적 정의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물질이 결핍된 사회 속에서 낭만이라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여 사회가 복잡해지고 도시화되는 상황 속에서 기차길이니 논두렁이니 하는 단어들은 삭막한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주고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윤활유와 같을 수 있지마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의식주조차도 해결할 수 없어 옥수수 죽을 끓어먹으며 별 희망 없이 그날그날 땅을 파며 살아가는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에게 평야를 가로지르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뭐 그리 낭만적이겠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통일에 대한 감상적 접근과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의 그늘을 확대 해석해 한국의 경제적 성과를 비하하는 가운데 형성된 편향된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털어 내야 한다. 이런 패배주의적 사고로는 통일의 역사적 과제를 재도약의 기회를 삼을 수 없다. 

 

경제통합의 틀을 짜는 일은 우리 시대는 물론이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가늠하는 일이다. 사회주의 환상에 젖어 통일한국을 또 한번의 사회주의의 실험장으로 만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무의미하다. 오히려 우리가 이루어낸 경제적 성과의 그늘과 모순을 바로 잡아 자본주의의 천민화를 극복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2) 따뜻한 마음 : 대(對) 북한동포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국가의 운영체제와 사회제도와 같은 틀을 짜는 작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틀 속에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개인들의 마음과 행동양식에 바탕을 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 라는 문제이다. 이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독일통일의 사회적 갈등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기로 한다.

통일 후 이미 14년째로 접어들고 있는 독일사회가 아직도 동․서독 간의 심리적, 사회적 갈등으로 지역 간 이질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와 같은 이질감과 행동양식의 차이, 빈부의 격차와 사고형태를 비롯한 인식의 차이로 야기되는 갈등을 「머리 속의 장벽 Mauer im Kopf」이라는 표현을 통해 묘사하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동서를 가르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베를린을 둘러쌌던 장벽을 사라졌지만 아직도 동서독 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분단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갈등으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통일 후 아직까지도 양독의 지역적 차이를 드러내는 오시즈나 베시즈 (Ossis und Wessis)와 같은 단어들이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두 단어는 단순히 동독인과 서독인을 지칭하는 의미를 지닌 것 이외에도 이 단어 속에는 건방지고 잘난척하는 서독인,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가난뱅이 동독인이라는 냉소적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 인해 동서간의 갈등은 더욱 벌어지게 되고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독인들의 열등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이질감과 동독인들의 열등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지난 93년 9월 18일 서독 뒤셀도르프 소재 필립스 체육관에서는 미국의 흑인복서 햄브릭과 당시 독일의 세계 챔피언인 헨리 마스케 동독선수 사이의 제1차 지명방어전이 열렸다. 원래 복싱이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논란이 격심하여 프로복싱에 대한 호응도가 매우 낮은 독일사회이긴 하지만 마스케 선수가 유일한 라이트 헤비급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위치를 방어해야 한다는 자존심이 걸려있는 결전이어서 독일인의 관심은 대단하였다. 독일 최고의 여성 앵커 슈라이네마커스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이 필립스 체육관으로 몰려가는 등 9월 18일 밤은 뒤셀도르프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마스케 선수는 통일된 독일사회에서 독일을 대표해서 결전에 임하는 자세를 묻는 질문에 “나는 동독인들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다.” 라고 대답함으로 동․서독 간의 사회적 갈등의 깊은 뿌리를 암시한 바 있다. 이렇듯 동독인들이 느끼는 열등의식은 사회전반에 확대되어 있다. 이것이 때로는 외국인에 대한 증오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학대로 표출되기도 하여 통독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즉, 동서독은 외형상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 화폐통합을 비롯한 경제적 통합도 마무리되고 있으나 아직도 양독인들의 머리는 하나가 되지않고 있다.)


'트라반트'와 '바르트부르그'도 십여년씩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었던 동독인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다이믈러 벤츠를 구입할 수 있는 서독인들은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라는 투철한 이념 속에서 살아온 자신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장본인들인 것이다.(트라반트<Trabant, 일명 트라비>와 바르트부르그<Wartburg>는 동독에서 생산되던 유일한 두가지 승용차로 2기통이며 외관도 철이 아니라 자기류로 만들어졌다)

동독인들의 이러한 의식은 사유화 과정이 진척됨에 따라 더욱 가중되고 있다. 늘어나는 실업자들로 야기된 사회불안은 경제통합의 주역으로서 사유화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트로이한트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사유화 작업이야말로 동독재산을 민영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돈 많은 서독인들에게 팔아치우는 작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동독인들은 자신들의 상대적 박탈감의 책임을 트로이한트에 돌리곤 했다. 그동안 베를린 트로이한트 본부 앞에서 벌어져 왔던 수많은 시위행각이며 로베더 청장의 암살, 연일 보도되는 사유화 작업에 따른 부작용들이 이와 같은 어려움을 잘 말해주고 있다.

독일통일의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북한의 공산체제를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사유화 작업은 보다 철두철미하고 확실한 이론적 무장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작업임을 감지하게 된다.

 

특히 북한은 막강한 군부를 중심으로 유지되어오고 있는 체제이며 권력해체 작업에 대한 이들의 반발 역시 매우 클 것으로 사료된다.

통치자의 투철한 의지, 책임있는 통일 전문가들의 행동, 국민 모두의 합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통일 담당자 그리고 각종 부작용과 갈등을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풀어갈 통일의 역군들이 사유화 작업과 함께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동독재산의 사유화를 담당했던 기관은 트로이한트의 역할 속에서 북한의 성공적인 사유화 작업의 가능성을 찾아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다.

I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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