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Nie wieder Sozilismus" 사회주의여 영원한 안녕

박상봉 박사 2006. 3. 17. 11:52
 

“Nie wieder Sozialismus 사회주의여 안녕”

- 동독 자유선거로 서독연방에 편입


89년 가을 절정을 이룬 동독주민들의 반공산당 투쟁은 두 가지 결실을 이뤘다. 하나는 동서를 물리적으로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탁회의(Runder Tisch)’라고 하는 정치그룹을 탄생시킨 것이었다. 원탁회의는 호네커의 실권 후 총서기에 오른 크렌츠 집권 시절인 89년 12월 7일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원탁회의의 주요 구성원은 정치적 변혁기에 동독의 민주시민운동을 주도했던 재야시민단체와 교회대표들이었다. 이들은 전환기 동독의 실질적인 주도세력으로 당시 혼란기의 동독의 주요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국가를 이끌었다. 이렇듯 국민의 뜻이 원탁회의로 모아지자 모드로브 총리는 기존의 집권자들이 대화를 거부했던 이들과의 공식대화를 요청하고 90년 1월 28일에는 정부도 원탁회의에 공식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혼란기에 국민의 뜻을 실질적으로 대변했던 원탁회의는 당의 ‘창과 방패’로 공산권력의 시녀였던 국가안전부 슈타지의 해체를 공론화했으며 헌법개정과 조속한 시일 내에 동독 내 자유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동독국민들의 뜻을 존중해 서독의 콜 총리도 단계별 통일론을 바탕으로 일차적으로 동서독간 계약공동체를 만들자는 동독의 모드로브 내각의 제안을 거부하고 우선 동독 내 자유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원탁회의는 90년 5월 6일로 예정됐던 차기 선거를 3월 18일로 앞당겨 실시키로 한다는 데 합의하고 이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다. 동독 유권자 총 1,220만이 참가하게 될 최초의 자유선거에는 24개 정당과 여러 정치적 그룹들이 출마의사를 밝혔다. 이 선거의 최대 쟁점은 미래에 있을 통일에 관한 사안으로 어떠한 형태의 통일을 추진하며 어떤 속도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서독의 헌법인 기본법은 통일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기본법 23조는 연방의 확대조항으로 동독의 경우 서독연방에 편입됨으로써 통일이 완성된다는 규정이며 146조는 통일헌법을 제정해 법적인 틀을 만들어 통일을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동독 기민당은 23조와 함께 ‘Nie wieder Sozialismus 사회주의와의 영원한 이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46조를 내세웠던 사민당은 ‘미래의 새로운 이름 사민당’을 구호로 선거를 치렀다. 이에 비해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은 동독과 서독이 일대일 국가 간 동맹을 맺자고 주장했고 서독의 녹색당의 지원을 받던 동맹 ‘90은 양독이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룰 것을 요구했다.

선거결과 동독 주민들은 독일연합에 48%, 사민당에 21.9%, 민사당에 16.3% 그리고 동맹 90에는 불과 2.9%의 표를 선사해 서독연방에의 편입을 통한 통일과 사회주의와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며 통일의 불을 지폈다. 북한 대중들이 원하는 통일이야말로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첫 단추인 것이다.

IUED

 

                           

 

◇1990년 3월 18일 동독 최초의 자유총선에 출마한 독일연합의 선거 포스터. 기민당이 중심이 된 독일연합은 통일부정론자들에게 기회를 주지말자는 구호와 함께 ‘사회주의여 안녕 Nie wieder Sozialismus’을 전면에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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