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통일과 눈먼 돈

박상봉 박사 2006. 2. 27. 09:36
 

통일과 눈먼 돈

- 국정공백의 틈에서 생겨난 ‘눈먼 돈’ 들

- 통일 지원금 충분한 심사없이 배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철거됐다. 이것으로 분단과 냉전의 대표적인 상징이 제거된 셈이다. 장벽이 세워진 지 실로 28년만의 일이었다. 독일사회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충격은 매우 컸다. 통일을 국가적 과제로 인식해 왔던 독일사회도 이렇듯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콜 총리의 특별안보보좌관이었던 호르스트 텔칙 박사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연일 터져 나오는 사건 하나 하나가 워낙 중대해 정책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이를 정책의 틀 속으로 수용하는 일조차도 힘겨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것은 행정공백으로 나타났고 이 시기를 틈타 다양한 불법행위들이 자행됐다. 이 불법행위들은 ‘통일범죄’라고 불렸고 그 규모와 시기적 특성으로 인해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통일범죄 속에는 동독의 급격한 몰락으로 나타난 국가권위의 부재로부터 생겨난 범죄행위도 포함되었다.

1999년 초까지 베를린 검찰의 추산에 따르면 통일범죄와 관련되어 약 10만 여명을 대상으로 6만2,000여 건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중 베를린에서 조사 중인 사건이 2만1,000 건에 달해 베를린 시가 통일과 관련된 범죄의 본거지였음이 드러났다.


통일범죄와는 구별되지만 동독정권의 통치과정에서 발생한 범법행위도 통일 직후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통치범죄는 근본적으로 1989년 말까지 동독의 과거 국가 및 정당지도부의 대표들에 의해 자행된 범죄로 동서독 국경에서 있었던 발포사건, 동독 내 선거조작사건이나 법의 남용문제들이 속한다. 이러한 통치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1991년 통일범죄 중앙조사위원회(ZERV)가 설립되었다.

통일범죄 중에는 정치적 범죄행위 이외에도 행정공백과 국가권위 부재를 틈탄 경제적 불법행위들이 큰 문제였다. 통일비용을 위해 유럽연합, 연방, 주정부가 제공한 지원금들이 충분한 심사과정도 거치지 않고 배분되었다. 사람들은 유령회사를 만들어 창업자금을 지원받기도 하고 후원금과 보조금을 위해 거짓 정보를 제시하기도 했다. 대차대조표가 허위로 작성되고 사업계획서가 날조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불법행위 속에는 제도적 결함으로 선량한 대중을 대량으로 범법자로 만든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1990년 7월 1일자로 발효된 경제, 통화 및 사회통합이 이러한 불법경제행위들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독의 경제상황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그리고 단일 통화가 도입될 경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은 후에 결정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동독몰락과 함께 생겨난 ‘눈먼 재산’과 동독재건이라는 명목 하에 여과없이 투입된 ‘눈먼 돈’들로 예상치 못한 범죄행위들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독일에서 있었던 통일범죄가 한반도에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IUED

 

                       

 

◇1990년 5월 18일 동독과의 경제, 통화, 사회통합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한 후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콜 총리. 이 합의서는 오늘날까지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