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 세계 11대 강국의 허구

박상봉 박사 2006. 2. 12. 16:38
 

동독, 세계11대 강국은 허구

- 공산집단의 힘과 시장의 저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철거는 냉전상황을 종료하는 역사적 상징이다. 이념 간 갈등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체붕괴로 일단락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구 공산권의 개혁이 시작됐고 이들 국가들과의 경제교류와 협력도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체제전환 과정은 신흥 개혁세력과 구(舊) 공산세력과의 끊임없는 충돌로 그 일정이 불투명하며 본격화된 구 공산권과의 경제적 차원의 교류와 협력도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초기에 화해 협력의 분위기에 휩싸여 구 공산권에 진출했던 대다수 기업들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도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런 교훈에 무지하다. 냉전이 끝났으니 중국, 러시아, 동유럽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당위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경협은 이런 당위론의 결과다. 경협이 아니라 일부 정치집단이 추구하는 비현실적 환상에 몇몇 기업이 동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경쟁유착이었다.

구 공산권의 개혁과정은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힘의 결집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시장만이 기존 공산집단의 막강한 저항을 잠재울 수 있는 힘을 창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도 ‘계획’이라고 하는 인위적 힘에 압도당하기 쉬운 약점이 있다. 그것은 계획 속에 은폐된 조작과 미화 때문이다.


독일 통일의 핵심은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시장을 만드는 일이었으나 이 일은 초기부터 예상 밖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주된 이유는 동독의 경제적 현실을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경제력을 과대평가 했기 때문이었다.

동독을 사회주의 부국이자 세계 11대 산업강국이라고 믿었으나 허구였다. 8,000여 개에 달했던 동독기업들은 불과 1/3 정도만이 겨우 독자생존이 가능한 정도여서 이를 매각해 동독 경제재건에 투입키로 했던 서독정부의 목표는 초반부터 차질을 빚었다. 이것은 공산권과의 경제교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에 대한 객관성을 전제로 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1989년 통일 전 사통당에 의해서 비밀리에 추진됐던 동독의 산업동향 분석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밀문건 b5 1158/89였던 이 자료에는 악화일로에 있던 동독의 경제상황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생산원가가 국제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매년 30억 마르크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산업 인프라 개선 및 구축 사업이 시급하다. 현재 고속도로와 국도 등 도로 파손율이 심각한 수준이다. ▲산업장비 노후의 가속화로 장비의 훼손율이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 1975년에 47.1%이었던 훼손율이 1988년에는 53.8%로 증가해 장비 교체가 시급하다. ▲주택 노후로 라이프치히 市나 괴를릿츠와 같은 중소도시에는 수천개의 주택이 거주불능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경제활동의 조정자로서 계획과 지도의 기능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동독의 노동생산성은 서독에 비해 40%나 낮은 수준이다.

통일은 화해와 평화라고 하는 구호만의 사안이 아니다. 통일된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냉엄한 현실을 묻고 있는 것이다.

IUED

 

                         

◇1950년대 제1차 경제5개년 계획 하에서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동독의 산업재건에 대한 선전포스터. 이 야심찬 ‘계획’은 40년 만에 허구로 드러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