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에 은행을 세워라

박상봉 박사 2006. 1. 13. 09:23
 

동독에 은행을 세워라

- 코퍼 은행장,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동독 은행제도의 특징은 중앙은행이 일반 시중은행의 기능도 병행해 국립은행이 발권업무, 통화정책뿐 아니라 산업 및 무역금융 업무도 직접 관리했으며 일반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행용 외환업무까지 담당했다는 데 있었다. 일반 시중은행은 일반고객이 아닌 특수고객과 특수업무만을 취급했고 은행간 경쟁은 존재치 않았다. 일반국민들은 마을금고라고 하는 지역금고를 주로 이용했고 제한적이지만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이런 가운데 동서독 경제통합의 핵심이 되었던 화폐통합은 동독의 은행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우선 일반 시중은행의 업무가 동독 국립은행에서 분리되었고 국립은행은 94년 서독의 재건신용기금(KfW)에 통합될 때까지 화폐통합 관련 교환차액보전기금의 운영을 맡았다. 통일조약에 따라 서독 재건신용기금에 통합된 동독 국립은행은 서독 연방에 새로 편입된 동독 5개주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동독 지역에 새로운 은행제도를 갖추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경제재건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이 일에는 서독의 금융기관과 금융인들의 노력이 매우 컸으며 이들은 동독 지역내 지점망을 확충하고 시장경제에 익숙한 금융인을 양성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특히 은행의 동독진출 사업에 경쟁적으로 활동한 두 은행은 서독 최대의 도이치 은행(Deutsche Bank)과 드레스드너 은행(Dresdener Bank)이었다. 이 두 은행은 동서독간 화폐통합이 발효된 89년 7월 1일 이후 경쟁적으로 동독지역에 은행 지점망을 설치하여 고객을 확보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알프레드 헤어하우젠의 후임자로서 독일 최대은행을 대표하고 있는 도이치 은행의 힐머 코퍼 은행장은 동독의 국립은행 관계자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갖고 전문금융인들을 동독에 파견해 동독에 금융시스템을 만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이치 은행은 이러한 전략적인 작업을 통해 동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통일 직후에는 동독 국립은행에 소속된 지점들을 조인트벤추어 형태로 무려 100여 개나 인수했다. 마을금고에 대부분의 계좌를 갖고 있던 동독주민들에게 은행을 적극 홍보해 통일의 해에 25만명의 신규계좌를 개설토록 했고 그 후 1년 만인 91년 10월말에는 그 수가 75만명에 달했다. 드레스드너 은행 또한 동독지역에 적극 진출해 91년 말에는 13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두 은행의 적극적 참여는 지점망 확충에서도 잘 나타난다. 도이치 은행이 91년 10월말 현재 250개의 지점을 개설하고 고용인력만 해도 총 1만1,000명에 달했으며 드레스드너 은행은 216개의 지점망에 7,600여명의 인력이 은행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 코퍼 사장의 “無에서 有를 창조한 것”이란 말처럼 제로 베이스에서 이루어낸 엄청난 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점망 확충 이외에도 기존의 금융기관에 대한 자문을 통해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양질의 금융인을 양성하는 일도 병행해야 했다. 동독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왜곡된 대차대조표, 즉 대변에 대한 과대평가와 차변에 대한 과소평가 규제는 물론이고 막 생겨난 금융 하드웨어를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일에도 서독 은행들의 역할은 대단했다.

IUED

 

                  

 

◇ 통일 후 1년 만에 동독지역에 250개 지점망과 1만1,000명의 금융인력을 창출해낸 독일 최대 민간은행 도이치 뱅크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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