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사통당 범죄행위는 시효정지

박상봉 박사 2006. 1. 8. 17:16
 

사통당(SED)의 조직적 불법행위는 시효정지

- 케슬러 국방장관에 징역 7년6개월 선고


서독 기본법(헌법)이 정하는 기본권은 법치주의에 따라 모든 국가활동과 권력행사에 우선한다. 이에 따라 기본권은 헌법전문에 침해될 수 없는 가치로 명시되어 있다. 반면 동독에 있어서 기본권은 사회주의적 질서를 위해 제한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하에서의 법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통일된 독일사회는 동독 40년 동안 국가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불법행위를 법적 틀 속에서 해결해야 했다. 연방법의 형법이 개인의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감안할 때 동독의 국가적 불법행위, 특히 여러 단계의 정부기관이 관련된 불법행위를 무리 없이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형법을 만들어 이를 처리하는 것도 상위법에 위배되어 여의치 않았다. 연방 기본법(헌법) 103조 2항은 형법의 소급금지원칙에 관한 규정으로 행위 당시의 법률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행위만이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따라서 통일조약도 원칙적으로 행위 당시 동독에서 유효하던 법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연방법이 행위지법(行爲地法)인 동독법에 우선해 적용될 수 있었다. 연방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특별법 적용의 원칙에 따라 1990년 10월 3일 통일 이전에 동독지역에서 행해졌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통일조약에 명시된 행위지법 우선의 원칙과 상관없이 형법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예를 들면 독일인에 대한 납치, 정치적 모략과 같은 불법행위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2년 11월 3일 대법원은 베를린 장벽을 넘던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국경수비대원에 대한 유죄판결을 확정해주었다. 물론 이들이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총격을 한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이는 생명을 경시한 결과로 동독의 법을 바르게 적용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불법행위였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1993년 9월 16일에는 사살명령의 책임자였던 동독 국방장관 하인츠 케슬러(Heinz Kessler)에게 7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는 89년 가을 동독인의 대규모 탈출이 절정에 달했을 때 공식적으로 국경수비대에 무기사용을 금지한 장본인이었다. 이렇듯 통일독일의 사법당국은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불법행위에 대해서 책임자는 물론이고 그 단순 집행자에 대해서도 철저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통당 정권 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불법행위와 관련해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지난 40년 사통당 집권기간 동안 시효가 정지되었던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독일사회는 이에 대해 시효가 정지되었음을 선언하고 인권에 반하는 해석과 해당 법률의 적용은 소급금지 보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방의회도 1993년 1월 21일 ‘사통당 정권 하의 시효정지에 관한 법’을 통과시켜 동독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불법행위에 대한 심판으로 통일된 국가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IUED

                          


 

◇ 살인행위!. 장벽을 넘다 사살된 동독 탈출자들을 추모하고 총격을 고발하는 기념판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