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다큐멘터리 "잊혀지지 않는 시간"

박상봉 박사 2006. 1. 6. 09:50
 

다큐멘터리  “잊혀지지 않는 시간”

- 독재정권 모순 드러내 자유가치 부각

- 민주주의는 그 자체에 적을 내재하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는 통일된 독일의 최고 가치다. 하지만 이 가치는 침해받기 쉬우며 이를 지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없으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독일의 헌법수호청이 “민주주의는 그 자체에 적을 내재하고 있다(Demokratie hat Feinde)”며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취약성 때문이다.

동독이 몰락한 지 8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98년 6월 5일 ‘공산당 독재 처리를 위한 기금(Stiftung zur Aufarbeitung der SED-Diktatur)’을 설립해 과거 독재권력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불법행위를 조사해 사회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기금은 주로 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전시, 출판, 홍보 및 학술지원 사업에 쓰여지고 있다. 동베를린 중심에 위치해 있던 공산독재권력의 창과 방패였던 슈타지 본부건물과 라이프치히 등 슈타지 지부를 전시장으로 활용해 독재권력의 불법행위와 이에 저항했던 재야세력들의 활동상황을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젊은 학생들에게 분단시절 동독 독재권력 하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필름을 제작해 이를 멀티미디어로 교육하고 홍보하는 일은 매우 효과적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의 하나가 독재권력의 만행을 다룬 다큐멘터리 '잊혀지지 않는 시간 (Keine verlorene Zeit)’이다.

1978년 4월 10일 슈타지(동독비밀경찰) 라이프치히 지부에는 암호명 ‘후견인’이라는 비밀공작이 하달되었다. 공작대상자는 한 청년단체로 친목단체이자 독서클럽이었다. 친목단체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당에서 금지한 서적과 주제를 설정해 토론회를 개최하곤 했다. 회원들은 이런 행동을 ‘반국가적’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스스로도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임이 반복되고 토론이 지속됨에 따라 이들은 이 사회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슈타지의 도청과 감시가 이어졌지만 일부 청년들은 선두에 서서 독재사회의 문제점들을 사회에 폭로하고 공론화하려 했다. 루돌프 바로 등 청년들은 슈타지의 비밀공작을 전혀 모른 채 ‘삐라’를 만들어 배포코자 했으나 발각되어 모두 체포되었다. 이들은 장기형에 처해졌고 슈타지에 의해 모든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말았다. 당은 조직적인 비방과 흑색선전으로 이들에게 반역자라는 누명을 씌웠고 이들은 인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이 필름은 순수한 애국청년들이 독재사회의 현실을 깨달으며 겪는 고뇌와 어떻게 독재권력이 이들을 말살시켰는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 이 다류멘터리는 학교의 교육현장에서 공개토론과 함께 상영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이렇듯 독일은 과거 암흑의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IUED

 

 

                    

 

◇ 라이프치히 토만 합창단이 동독 감옥을 방문해 독재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있다. 이 합창단은 분단시절 공산당 행사에 주로 동원된 합창단이었으나 통일 이후 독재권력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