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낙태허용 금지논란

박상봉 박사 2006. 1. 17. 10:04
 

낙태허용 금지 논란

- 통일조약, 임신중절법 3년간 유예


1990년 10월 3일 개천절인 이날이 독일에서는 통일의 날이다. 서독의 볼프강 쇼이블레(Schaeuble)와 동독의 퀸터 크라우제(Krause) 내무장관이 서명한 통일조약이 공식적으로 발효된 날이기도 하다. 이후 통일조약은 통일독일을 건설하는 법적 토대로 통일 이후 독일사회 건설의 가장 중요한 지침서였다.

통일조약은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1년이 채 못되는 짧은 시간 동안 서독의 콜 정부와 동독 최초로 자유선거에 의해서 탄생한 드메지어 정부가 이루어낸 쾌거였다. 정치적·경제적 협상이 국민을 주체로 한 민주화 요구와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긴박성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진 반면, 사회 문화적 협상은 예상치 않은 갈등의 표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독 형법 218조 ‘임신중절’에 관한 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일 당시 서독사회는 사회적으로 사민당과 여성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낙태허용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지만 임시중절을 형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동독에서는 임산부의 낙태가 법률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시행되고 있었다.


낙태를 둘러싸고 동서독 간 법적 규정이 커다란 차이를 보이자 동서독 정부는 향후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합의했다. 즉 3년 동안 양독 사회는 기존의 법적 틀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고 3년 후에 서로 의견을 조정해 합의점을 도출해낸다는 중재안이었다. 하지만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도 동서독 정부간 타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카알스루에(Karlsruhe)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르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임신중절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반인륜적 행위라는 최종판결을 내리고 동독에서 성행 중이던 임신중절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결정은 지난 100년 이상 낙태허용을 위해 투쟁해온 서독 여성들뿐 아니라 낙태에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동독 여성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특히 새로운 사회의 문화와 가치에 대한 생소한 동독여성들에게 ‘낙태는 위법’이라는 결정은 정신적으로 큰 불안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정신적 불안감은 통일 후 동독 경제 전체에 대한 구조조정 분위기와 함께 여성들을 임신기피와 조기 낙태로 내몰았다. 유예기간이 1년 남은 1992년에는 임신한 여성들이 직장에서 우선 퇴출된다는 소문과 함께 많은 여성들이 한꺼번에 산부인과를 찾아 낙태수술을 원하는 바람에 동독사회 전체가 낙태열풍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서독여성이나 서독에 거주하는 외국여성들도 이런 혼란기를 이용해 서독에서 금지된 낙태를 동독에서 시술하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한 한국인 특파원 부인도 이런 방법으로 원하지 않았던 태아를 낙태시킨 바 있다.

통일된 지 15년이 지난 독일이지만 형법 218조는 아직도 독일사회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로 남아 있다. 원칙, 이것이 독일통일로부터 얻을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IUED


                     

◇ 형법 218조는 임신중절을 형법으로 금하고 있다. 서독의 페미니스트들이나 동독 사회가 이 규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낙태는 위법’임을 선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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