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정보

요아힘 가우크

박상봉 박사 2005. 12. 20. 21:18
 

인물로 알아보는 독일통일

요아힘 가우크 (Joachim Gauck)

 

 

              

 

- 통일 후 동독의 국가안전기획부 슈타지의 비밀문서는 동독공산정권의 만행과 대서독 교란전술전략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예상 외의 인물들이 슈타지와 관련이 있었고 뜻밖의 사건들이 슈타지의 조정에 의해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슈타지에 대한 청산작업은 그들이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문서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일이 전제가 되었다. 요하임 가우크는 통일 후 이 일을 담당할 적임자로 지목되었고 독일은 슈타지 문서관리 부서를 가우크 청이라 불렀다.


- 가우크 청은 독일 전체에 14개 지부를 두고 슈타지가 남긴 800만건의 서류들을 관리했다. 동독 몰락 직후 핵심 문건들은 동독 공산당 SED에 의해 파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문서만 해도 일렬로 정리해 180km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우크는 1934년 1월 24일 동독 로슈톡에서 태어났다. 아비투어(우리나라 수능고사와 유사)를 마치고 신학을 공부한 가우크는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된 후 그는 한 교회의 담임 이외에 수년간 도시청년목사로서 일해왔으며 1982년부터 메클렌부르크 주 교회의 날 행사를 주도해왔다. 가우크 목사는 이러한 유형의 사역들을 통하여 인권, 환경 및 평화문제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식을 키워올 수 있었다. 이런 활동으로 그는 슈타지(국가안전기획부)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1989년 가우크는 고향에서 노이에스 포름의 설립에 동참하여 사회주의 통일당 SED 독재에 교회와 대중을 중심으로 항거하였다. 1989년 10월부터 가우크 목사는 로슈톡 마리엔 교회에서 설교를 전담하였다. 1990년 3월에는 시민운동 대표로 인민회의 의원이 되어 슈타지 해체관리를 위한 의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가우크 의원은 바이젝카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로부터 구 슈타지 업무 중 인사관련 문서에 대한 관리담당 연방정부의 특별담당관으로 임명받았다. 슈타지 문서관리법(Stasi-Unterlagen-Gesetz)이 연방의회에서 결의되자 특별담당관은 베를린에 소재를 두고 공식적으로 구동독 슈타지업무문서관리 연방담당관으로 개명되었다.

1995년 9월 21일 가우크는 압도적인 다수의 지지로 재선되었고 95년 10월 3일 두 번째 재임이 시작되었다.

가우크 담당관은 1991년 구 동독 민주인사 엔스 라히히와 울리케 포페와 함께 테오도르 호이스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1995년 10월 지난 1989년 동독의 무혈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또 다른 몇몇 동독인들과 함께 연방봉사상을 수여받았다. 1990년 1월 20일 가우크 목사는 로스톡 대학 신학부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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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크는 2010년 연방대통령에 출마, 크리스치안 불프에게 패했다. 하지만 불프 대통령이 수뢰혐의로 구설수에 올라 2012년 사임하게 되자 재도전해 당선된 바 있다. 그는 2012년 3월 18일 11대 독일 연방대통령에 올라 5년 동안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2017년 3월 18일 퇴임하였다. 12대 대통령은 사민당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가 선출되어 2022년까지 국가 원수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 2017.3.25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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