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재건

재산의 공유화

박상봉 박사 2005. 11. 19. 09:58
 

경제통합을 위한 이론과 사례3

재산의 공유화


시장경제는 자연스런 인간들의 경제생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룰과 제도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에 반해 계획경제의 사상인 사회주의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창조해낸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모순이라고 불리우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든가 물질만능주의와 같은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한 이성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점이 해결돼 평등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실험의 결과는 1세기가 안되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사회주의 사상이 허구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간의 자만심 때문이다. 사회주의 독재권력은 부족한 자원과 재화에 대한 독점으로 이어졌고 일반대중의 삶은 생필품의 부족으로 가난과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다.

재산의 사회환원이라는 기본 컨셉이 허상이었으며 평등한 사회건설이라는 구호는 한낮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구호에 불과했다.


1) 의미와 한계


재산의 공유화는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개념이다. 자본주의 모순으로부터 유추해낸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제도인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된다면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다 보면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가진 자(富者)’와 ‘못가진 자(貧者)’ 사이에 불평등이 확대되어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도 하에서의 기업은 공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생산활동을 통해 이윤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의 무정부상태가 연출되어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사회적 불안이 초래된다는 사고에 기초를 두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이 시작된 지 근 1세기에 걸친 사회주의 실험은 이런 사회주의적 사고가 오류임을 증명하고 있다. 사유재산을 금하고 재산을 국유화한 국가에서 더 심각한 불평등이 나타나고 일반 대중의 삶은 궁핍과 모자람으로 대변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주의의 실패의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 라는 의문이 남게된다. 서구의 많은 학자들은 재산의 사회가 공유하는 절차와 방법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어떻게 개인의 재산들이 정당하게 사회에 환원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다른 하나는 이렇게 사회화된 재산들이 어떻게 공평하게 관리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다.

모든 재산이 진정 사회로 귀속되어 공평하게 관리된다고 한다면 사회주의 체제가 그렇게 맥없이 와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재산의 공유화(인민화)이 과정을 관찰하게 되면 그 방법과 절차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독일통일 후 드러난 사실이지만 과거 동독 공산당 사(회주의)통(일)당의 사금고에 국립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보다 5배나 많은 금괴가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 재산의 공유화에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해외에 부동산을 비롯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칠레로 망명을 떠나기 직전 호네커의 계좌에 수백만 달러가 입금되어 동독을 빠져나갔던 것도 재산의 공유화가 얼마나 임의로 자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수백만의 주민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도 자신은 상어지느러미에 프랑스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이런 제도적 허구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정일의 개인 요리사는 전 세계를 다니며 고급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해 김정일의 입맛을 챙기고 있고 그 대가로 김정일로부터 메르세데스 벤츠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재산의 사회환원이란 구실 하에 당이 재산을 독점해온 사회주의 국가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2) 코코(KoKo)와 중앙당 39호실


- 독일의 최대 시사주간지 ‘Der Spiegel'는 199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기를 맞아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통일과정에 대한 심층취재한 보도 시리즈 'Wende und Ende (전환과 종말)’를 다뤘다. 일차로 총 34개의 주제를 시리즈로 보도한 것에는 “동독의 감옥의 돈벌이 창구”, “사통당을 살려낸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 “인민해방자로 환호를 받는 헬무트 콜(Helmut Kohl)", "사통당이여 안녕”, “습격당한 슈타지 본부”, “비밀제국 샬크 골로드코프스키의 코코”, “동독 특권층의 부패와 부정”, “시민의 눈, 깨어있어라” 등이 있다 -


동독의 코코(KoKo)는 비밀회사로 그 배후에는 호네커의 막강한 권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코코는 'Kommerzielle Koordinierung‘의 약자로 상업조정회의라고 번역되지만 동독의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관으로 정상적인 무역이나 대외거래를 통하지 않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만든 비밀조직이었다.

코코의 총책임자는 알렉산더 샬크-골로드코프스키(Schalck- Golodkowski)로 1989년 동독이 몰락하기까지 평생을 당의 외화벌이 사업에 투신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의 ‘창과 방패’로 알려진 비밀안전기획부 슈타지(Stasi) 총수 에리히 밀케(Erich Mielke)의 지도를 받아 슈타지 내부의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의 학위 논문의 주제는 ‘적의 경제력 활용’으로 서독을 비롯한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의 부를 갈취하고 빼앗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였다. 특히 서독사회가 이루어낸 경제적 부는 코코의 주요 타깃이었다.


외화벌이의 주역이었던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 살면서도 서방의 자본가들이 누리는 것 이상의 모든 혜택을 누린 인물이기도 했다. 코코는 산하에 220개 회사를 거느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왔다. 동독 몰락 후 코코의 지하실에는 동독 국립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의 5배에 달하는 21톤의 금괴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미루어 코코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코코는 1,000개 이상의 비밀계좌를 보유하고 있었고 서독의 도이치 한델스 뱅크에 개설했던 계좌번호 0628은 호네커의 개인계좌였다. 서독정부가 동독의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지불했던 지불금은 주로 이 계좌로 입금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네커는 이러한 불법 비자금을 수단으로 독재권력을 유지해왔다. 측근들을 위해 고급 장식품, 화장품 및 고급 양주 샴페인들을 사들여 선물했고 국민의 동의도 없이 수천만 마르크를 남미나 폴란드에 지원해주기도 했다.


코코는 외화벌이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감행했다. 국제사회가 이전을 제한한 기술들을 비밀리에 제3국에 이전해 거액을 챙겨왔고 양심수도 외화벌이로 이용했다. 코코 산하의 무역회사였던 IMES는 국제적으로 무기를 밀거래해 외화를 벌어들였던 회사였다. 이런 식으로 코코가 벌어들인 외화는 총 500억 DM(한화 약 25조원)에 달했고 이 중 적지 않은 자금이 해외에 은닉되었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통일 직후 바이겔 재무장관이 코코와 공산당의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5백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북한의 중앙당 39호실 역시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한다. 39호실은 동독의 코코와도 같이 외화벌이가 사업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39호실에 소속된 대성무역총회사는 산하에 수십개의 무역상사와 운수회사, 해외지사 및 대성은행을 두고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각 단체 산하에 여러 사업체를 두고 외화벌이에 동원하고 있다. 이 중 조선 아태평화위(위원장 김용순, 부위원장 송호경, 리종혁, 최승철 등 8명)는 대남사업을 주도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외화벌이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금광으로 연간 10톤 내지 15톤을 생산한다. 북한의 금광은 모두가 김정일의 소유다. 또한 대량살상무기, 위조달러, 마약 등의 밀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도 모두 김정일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된다.


김정일은 이 비자금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등지에 은닉해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서방의 고급 상품들을 구매해 자신과 측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주요 구매품목 중 하나가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다. 김정일이 측근에게 주는 벤츠의 번호는 「216xx」다. 「216」은 김정일 생일을 의미하며 「216」으로 시작되는 차는 특권층을 상징하고 있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일간지는 지난 1992년 7월 3일자에 북한 공산당에 관한 기사를 심층 보도했다. "파멸로 종결될 완만한 하향곡선 (Langsamer Niedergang bis zur Explosion)"이라는 제하의 이 보도는 폭발직전의 북한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이 폭발을 지연시키고 있는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공산당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연료가 부족해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있고 도로 주변에 여기 저기 널려있는 화물차, 심지어 홍콩과 일본에 수출해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고기잡이 어선들도 에너지가 부족해 항구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선원들에 따르면 연료가 부족해 출항할 수 없어 평균 어획고의 1/3도 못 미치는 어획량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일성 집단은 이런 경제적 어려움과는 달리 비밀리에 제3의 인물을 내세워 스위스에 비밀리에 은행을 설립 운영해 상당량의 재산을 국제금융시장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 신문은 또한 북한이 몰락할지라도 김일성 공산집단은 상당량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엄연한 현실 앞에서 재산을 인민에게 환원한다는 재산공유화는 허구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민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당에서 관리하고 있는 재산은 당의 독재권력과 사적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3) 공산당의 불법재산


냉전체제 하에서 공산당이 축적해 놓은 불법재산은 때로는 그 규모가 국가예산을 능가한다. 이들 불법재산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불법으로 은닉되기도 하고 갖가지 편법을 동원해 해외로 유출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불법재산을 효과적으로 색출해 내는 일도 통일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특히 통일을 이룬 후 북한의 경제를 재건하는 일에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런 불법재산을 환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가늠하게 된다.

독일 통일정부의 최대과제도 무너진 동독사회를 재건해 내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 대규모 재정을 마련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콜 정부는 내무부 산하에 정당재산위원회(UKPV)를 설립해 구 동독공산당들이 은닉해놓은 재산에 대한 환수작업에 착수했다. 동독 공산당의 불법재산을 색출해 낼 임무를 갖고 탄생한 정당재산위원회의 주요임무는 다음과 같다.


동독정당 및 단체들이 은닉한 재산을 파악하는 일

해외도피 재산을 조사하고 압수하는 일

은닉 재산을 환원하기 위한 법적조치를 취하는 일

통일관련 특수업무청과 협조해 상기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일

은닉재산이 동독정당과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

연방의회에 관련자료를 제출하는 일 등


구 동독 공산당과 단체들이 국내외에 은닉해 놓은 재산을 색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업무들이었다.


당시 구 동독 공산당 사회주의통일당의 재산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89년 동독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사통당의 후신인 민사당(SED/PDS)의 간부들이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는 주요 재산을 여러 방법으로 도피시켰기 때문이다. 민사당을 창당한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가 이 시기에 모스크바를 비롯해 유럽 전지역을 여행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산 규모에 대해서 통일과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중앙수사대(ZERV)의 키틀라우스(Kittlaus) 대표는 당시 동독의 재산규모를 대략 260억 마르크(약13조원)로 추정했고 반면 베를린 지방검찰청은 약 90억 마르크(약4조2천억원)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당재산위원회는 98년 3월 지난 8년 간 수행해온 구 동독 공산당의 은닉재산 색출작업에 대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첫째, 동독정당 및 단체가 은닉한 재산 중 총 26억4천만 마르크를 색출해냈다. 이 중에는 당이 은닉한 재산이 20억1천만 마르크에 달했다. 그리고 동독의 자유노조연맹의 은닉재산 분은 4억2,000만 마르크, 동독자유청년회의 몫은 6,427만 마르크였다.


둘째, 건물․토지로 6,129건의 부동산이 밝혀졌다.

동독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연락소, 휴게소 등은 모두가 당의 재산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고 대부분이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독주민들은 이런 시설에 대해 그저 당이 필요로 해 사용하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일절 무관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금재산의 경우 사회주의통일당이 현금재산으로 보유했던 규모는 62억 마르크였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 중 해외로부터 3억2,500만 마르크를 찾아내 국고에 환수시켰다.


이밖에도 은닉재산에 대한 여러 경로와 건수가 밝혀지고 있는데 당의 재산 주역은 당 소속 기업들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 2002년 2월 29일 튀링겐에서 발행되는ꡐ튀링겐란데스 짜이퉁ꡑ지는 당시 동독의 혼란기에 총 150개 법인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인맥을 이용해 총 2억3,930만 마르크를 대출했던 것도 재산도피의 한 형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 국가가 조직적으로 은닉해 놓은 재산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독 공산당의 재산도피 행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김정일 집단에 의해 은닉된 불법재산도 상당량의 규모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통일을 앞두고 이러한 불법재산을 조기에 파악하고 이를 최대한 환수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I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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