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푸트닉 스켄들: 공산당의 불법재산

박상봉 박사 2005. 11. 15. 08:20
 

푸트닉(Putnik) 스캔들


동서독 통일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동독 공산당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으로 당의 명목을 겨우 유지해낸 민사당(PDS)의 금고에는 적지 않은 현금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미 공산당 불법재산에 대한 정부의 다양한 색출작업이 있었지만 민사당의 적지 않은 재산들이 해외로 은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트닉 스캔들은 당 재산의 해외도피의 대표적 사례로서 소련 국적의 회사를 이용해 재산을 유출시키려다 적발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총책은 민사당의 폴(Pohl) 부총재가 맡았고 그의 주 임무는 소련 공산당의 도움을 받아 재산을 해외에 도피시키는 것이었다.


폴은 동독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의 은행계좌를 이용한다는 계획 하에 90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의 당 지도부와 재산도피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의 재정담당자들은 소련의 주둔군 계좌는 서독 정부가 속속 파악하고 있어 이를 이용한 재산도피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소련 기업의 미수금 계정을 이용한 계좌이체 방식을 제안했고 당시 공산당 할레 지부장이자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카우프만을 이 일의 적임자로 추천했다.

민사당 지도부는 소련 공산당 간부들과도 관계가 좋은 카우프만에게 전권을 주었고 그는 소련 공산당 요원들의 도움으로 소련 기업인 푸트닉 사를 골라 재산도피 행각을 시작했다. 그는 푸트닉 사가 과거 동독 사통당과의 거래중 처리되지 않은 미수금이 남아있다는 서류를 조작했다. 총 1억700만 마르크 상당의 미수금이었다.


다른 한편 카우프만은 동베를린 사업가였던 클로스터만에게 100만 마르크 수수료를 지불하고 무역회사였던 푸트닉 사 명의의 계좌를 개설했다. 우크라이나에 생필품을 수출한다는 목적이었다. 민사당의 폴 부총재는 개설된 계좌로 90년 9월 13일 1차로 9,500만 마르크를 이체했고 카우프만은 9월 24일 추가로 6,000만 마르크를 계좌이체 하는 등 총 1억7,000만 마르크(약1,000억원)를 푸트닉 사의 계좌로 입금시켰다.

하지만 거래이체의 내역을 이상하게 여긴 은행측의 꼼꼼한 조사로 일련의 자금이동이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불법자금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은행은 즉시 계좌를 동결했고 카우프만은 베를린 소재의 다른 은행의 계좌를 통해 노르웨이에 개설되어 있던 푸트닉 사의 계좌로 재산을 이체했다. 그러나 이 거래도 의혹을 받게 되었고 오슬로 노르스케 은행은 이체된 금액을 푸트닉 계좌에 입금 처리하는 대신 은행내부 계좌에 동결시켰다.


노르웨이 경찰은 90년 10월 18일 이 사실을 독일 연방형사청에 알렸고 형사청은 관할경찰인 베를린 경찰에 사건을 이체했다. 이 사건을 접수한 베를린 경찰은 민사당 중앙본부, 카우프만의 가택 등 관련자들의 가택과 사무실을 수색하고 일체의 불법자금이동의 전모를 밝혀냈다. 결국 동독재산 관리를 담당했던 트로이한트는 모든 불법자금들을 돌려받았고 이 일의 주범들은 체포되어 보다 정밀한 조사를 받았다.

이렇듯 구 동독 공산당 재산의 해외도피는 여러 형태로 추진됐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독일정부의 노력도 지대했다. 자금의 불법세탁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는 유럽의 은행제도가 아니었더라면 이 푸트닉 스캔들도 영원히 미궁 속에 빠졌을 것이다.

IUED

 

     

 

◇ 구동독 공산당 사회주의통일당(SED)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현금과 금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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