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체제전환의 핵심

박상봉 박사 2005. 11. 6. 08:15
 

체제전환의 핵심 : 동독기업의 사유화


동독이 몰락되기 전 공산당은 ‘동독이 세계 10대 강국’에 속한다고 주장해왔으며 서방의 옵서버들도 이런 주장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환상이었고 이 환상은 1989년 동독의 정치적 붕괴와 함께 경제적으로도 파산 직전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파산 직전의 동독은 풍요로운 서독 사회와의 통합을 원했고 동독인들은 “서독 마르크화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마르크화를 찾아간다”는 말로 그들의 통합의지를 표현했다. 동독인의 의지를 확인한 콜(Kohl) 정부는 ‘화폐 및 경제·사회 통합’을 선포하고 동독과의 경제적 통합의 시동을 걸었다.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으며 동독 경제재건 프로그램들이 개발 추진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동독의 비효율적 산업구조를 개혁해 경제발전의 틀을 재건하는데 초점이 모아졌다. 이 일의 핵심은 기업을 사유화(Privatisierung) 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동독 사유화는 기업을 민영화해 경영상의 효율성을 높이는 단순한 민영화의 차원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닌다. 동독기업 사유화의 특징은 특히 사유화가 동서독 경제통합의 핵심적인 수단이라는 데 있다. 사유화를 통해 국가의 계획과 통제로 운영되던 기업이 체질을 바꾸어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경제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동독기업의 민영화의 과정을 굳이 ‘사유화’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동독경제의 민영화는 단순한 기업의 탈 국유화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던 인민재산을 개인들에게 이양해 사회주의 체제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둘째, 이를 통해 사유재산제도를 제도화함으로써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정착시키는 데 있다.


동독의 사유화는 이렇듯 역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일의 역사성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동독 공산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유화라고 하는 국가전체의 구조조정으로 야기된 실업과 같은 사회적 부작용을 이용해 정당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정치세력도 있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 추진된 사유화 작업은 동독 내 총 1만여개 이상의 기업, 2만여개의 도소매업, 8,000여개의 호텔과 유흥업소 그리고 230만 헥타아르 농지와 190만 헥터아르의 임야 등을 대상으로 했으며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대(大)사유화와 소(小)사유화가 그것인 데 전자는 주로 기업 등 대규모 탈 국유화를 의미했으며 후자는 음식점, 숙박업 등 사유화 과정이 비교적 간단한 업종에 대한 민간이양 작업이었다.


특히 대사유화의 주 대상인 기업은 대기업 위주라고 하는 사회주의 기업의 특징으로 인해 기업의 분할 매각이 요구되었고 이를 위해 엄청난 작업이 요구되기도 했다. 사유화 업무에 대한 주무부서인 트로이한트가 전국의 주요 경영학도들을 대규모로 채용해 이 일을 담당키로 했던 독일의 사례들이 우리의 통일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IUED

 

 

       

 

◇구 동독 작센·안할트 주(州) 소재 로이나(Leuna) 정유공장을 인수한 프랑스의 국영기업 엘프(Elf) 정유회사가 공장시설들을 확장 정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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