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2+4 회담

박상봉 박사 2005. 11. 11. 08:37
 

2+4 회담(Zwei-plus-vier-Vertrag)


독일통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및 주변국들의 동의가 없으면 가능치 않았다. 거대독일의 출현은 유럽의 안보와 안정적 발전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1989년 동독이 몰락함에 따라 가시화된 동서독 재통일도 이러한 국제정세에 좌우될 운명이었다.

2+4 회담은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탄생했다. 동·서독 당사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외무장관이 참여했고 전적으로 독일통일 문제를 다루기 위한 회담이었다. 이 회담의 특징은 90년 5월 5일에 시작해 9월 12일까지 4개월 만에 무려 네 차례 회담을 개최하고 10개 조항에 6개국 외무장관들이 서명을 하는 마라톤 회의였다는 데 있다.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완전 주권을 회복하고 역사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독일은 이 회담이야말로 전승국과 소련의 양보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미국은 독일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으로 초기부터 독일문제는 독일인의 자율에 맡길 것을 요구했다. 부시 대통령은 1989년 12월 3일 말타에서 개최된 미소정상회담에서 독일통일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설명하고 향후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회담 파트너인 고르바초프와의 군축협정 체결로 미소 화해 분위기도 독일통일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미국의 지지 못지않게 소련의 입장이 중요했던 서독은 소련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2+4 회담 이외에 독소 외무장관회담이 90년 5월 23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이후 6월에만 3차례 열린 것도 이 노력의 일환이었다. 콜 총리는 대소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에도 빈틈이 없었다.


결국 1990년 7월 15일부터 양일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독소 확대정상회담에서 소련도 독일통일에 길을 열어주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파트너로서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세바르드나제가 이미 1986년에 유럽 지역정세에 대한 평가에서 독일분단의 지속이 장기적으로는 유럽 평화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결정에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2+4 회담은 1990년 9월 12일 동서독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국 외무장관이 조약에 서명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합의되었다.


▲ 동서독 현 국경은 독일통일과 함께 더 이상 재론치 않고 확정된다 ▲ 통일된 독일은 헌법과 유엔헌장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 ▲ 통일된 독일은 핵·화학·생물무기 등 소위 ABC 무기를 포기하며 94년까지 병력을 37만명으로 축소한다 ▲ 소련군의 주둔조건, 기간 및 철군일정에 대해 양국이 협정을 체결한다 ▲ 소련군 철수가 완료될 때까지 동독지역에는 외국군대가 주둔할 수 없으며 나토 등 군사동맹에 소속되지 않은 독일군대가 임시 주둔한다 ▲ 기존의 국제적 군사동맹 회원국의 권리와 의무에는 변함이 없다 ▲ 2+4 조약이 국가별 비준절차를 끝낸 시점에서 미·영·프·소련이 독일에 행사하던 권리와 책임도 종결되며 관련기관도 해체된다. 독일은 완전주권을 회복한다 ▲ 합의서에 대한 6개국의 비준은 독일통일에 대한 비준을 의미한다.


이 합의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은 비준절차를 밟아 이 문서를 통일독일 정부에 전달했고 소련이 가장 늦은 1991년 3월 3일에 모든 비준절차를 마쳤다. 동독 탈출자에 의해 촉발된 혼란의 시기에 미, 영, 프, 소와 주변국을 향하여 펼친 서독정부의 일관된 외교야말로 독일통일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IUED



◇1990년 9월 12일 동·서독 및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6개국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 통일문제에 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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