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동독공산당의 재산은닉

박상봉 박사 2005. 10. 22. 10:13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재산도피

- 정당 재산위원회 설립, 은닉 재산 색출 작업


1989년 말 동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한 해였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동독 내 민주화요구가 거세지는 등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어 갔고 서독과의 구체적인 통일의 과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다. 동독 공산당 지도부는 부도덕한 과거행적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인민재산이란 명분 하에 당이 소유하고 있던 각종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다른 한편 통일 후 동독을 포함에 전 독일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며 통일독일의 초대 내각인 콜 정부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동독사회를 재건하는 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동독재건에 투입될 대규모 재정을 마련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고 이 가운데 동독재산을 색출해내 재건사업에 활용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하지만 동독재산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통일 첫해인 1990년 내무부 산하에 정당재산위원회(UKPV)를 설립해 이일을 담당토록 했다.


UKPV의 주요임무는 ▲ 동독정당 및 단체들의 은닉재산 파악, 특히 해외도피 재산조사 및 압수 ▲ 상기재산 환원을 위한 법적 대응 ▲ 통일관련 특수업무청과 협조, 상기재산에 대한 관리 및 처분 ▲ 법적처분이 요구되는 재산목록의 동독정당과의 연루에 관한 증거확보 ▲ 연방의회에 관련자료 제출 등과 같은 은닉된 재산을 색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업무들 이었다.

당시 사회주의통일당의 재산규모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달랐다. 그것은 89년 동독의 체제전환기에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인 민사당(SED/PDS)의 간부들이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는 주요 재산을 여러 방법으로 도피시켰기 때문이다. 민사당을 창당한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가 이 시기에 모스크바를 비롯해 유럽 전지역을 여행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다.


통일관련범죄중앙수사대(ZERV)의 키틀라우스(Kittlaus) 대표는 당시 동독 당이 직접 소유하고 있던 재산규모를 대략 260억 마르크(약13조원)로 추정한 반면 베를린 지방검찰청은 약 90억 마르크(약4조2천억원)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당재산위원회는 98년 3월 지난 8년간의 활동 속에서 드러난 동독 사통당의 은닉재산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첫째, 동독정당 및 단체가 은닉한 재산으로부터 총 26억4천만 마르크를 색출해냈다. 이 중 공산당인 사회주의통일당이 은닉한 재산이 20억1천만 마르크에 달했고 동독자유노조연맹이 4억2,000만 마르크, 동독자유청년회이 6,427만 마르크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건물·토지로 6,129건의 부동산이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현금재산의 경우 사회주의통일당이 현금재산으로 보유했던 재산이 62억 마르크였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해외로부터 3억2,500만 마르크를 찾아내 국고에 환수시켰다.

 

이밖에도 은닉재산에 대한 여러 경로와 건수가 밝혀지고 있는데 당의 재산보호를 위한 동독 공산당의 재산도피 행각의 주역은 당 소속 기업들이었다. 올해 2월 29일 튀링겐에서 발행되는 ‘튀링겐란데스 짜이퉁’이 동독의 혼란기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인맥을 이용해 총 150개 법인에 총 2억3,930만 마르크를 대출했던 것도 재산도피의 한 형태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IUED

                        

 

◇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SED) 마지막 총재로 선출된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 그는 당을 민사당(PDS)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당 재산을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왼쪽에서 3번째 축하를 받는 인물이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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