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서독정부의 이산가족정책

박상봉 박사 2005. 10. 18. 06:43
 

서독정부의 이산가족 정책

- 동독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해 34억 마르크(1조8천억원) 지불 -


통일 전 서독정부가 추진했던 이산가족 정책의 특징은 원칙과 실용성이었다. 이것은 언젠가 양 국가는 재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본법 정신에 기인했다. 이 정책의 주 대상은 동독탈출자와 해외이주자들이었고 서독 정부의 각종 배려 속에서 서독으로 이주해왔다.

탈출 동독주민들을 위해 ‘연방귀순자수용법’이 제정됐고 해외이주자들은 혈통주의에 근거해 모두 수용되었다. 헌법에 해당하는 서독기본법(Grundgesetz) 제116조는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독일을 떠나야 했던 교포나 후손들에게 독일 국적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혈통은 이 법에 근거해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고 동독 귀순자와 같은 유리한 보호 대책을 마련해 서독 내 적응을 도왔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이외에도 서독 국민들은 구소련을 중심으로 동부 및 중부유럽 에 흩어져 살고 있던 독일계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이 오랜 세월에 걸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고 패전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다. 또한 이들은 19세기 중반부터 유럽대륙에 싹튼 민족주의로 큰 고통을 받아왔다.

분단된 채 동독에 거주하던 주민들에 대한 수용과 보호대책은 국가의 자국민보호, 자유, 인권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 하에서 단순한 금전적 혜택보다는 서독의 사회보장체제에 이들을 수용하고 자립해 살아가도록 하는 조치들을 마련해 주었다.

이에 따라 자유를 갈망하며 고향을 떠난 동독인들은 서독정부에 의해 보호되고 수용되었다. 1949년 분단 첫해부터 동독인 13만명이 서독에 이주했고 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까지 매년 평균 20여만명이 서독에 귀환했다. 이들에게는 저소득층에게 주어지는 사회주택이 우선적으로 제공되었고, 동독에서 다니던 직장의 보수에 걸맞는 실업수당이 지급됐다. 그리고 동독에 남겨둔 동산에 대한 보상금 명목으로 1,800 마르크가 지급됐고 그 외에도 임대비 지원 및 각종 세제지원이 이루어졌다.


특히 동독에 억류되어 있던 양심적 정치범들에 대한 서독정부의 배려는 서독사회가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시 여기며 체제와 관련된 고통에 얼마나 적극 개입하는 가를 잘 설명해주는 일이었다. 서독 정부는 이들 정치범들을 위해 총 34억 마르크 (한화 1조8천억원)를 지불했고 63년부터 89년까지 총 3만3,577명의 양심수들을 석방, 서독에 이주시켰다.

이에 반해 동독정부는 이러한 상호방문의 기회를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우선 동독 방문자들에게 40마르크에 해당하는 현금을 가치가 낮은 동독 마르크와 1대 1로 의무 교환토록 했고, 동독인들의 서독방문은 매우 선별적으로 허가했다. 국제적으로 자유로운 서독 방문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서독방문은 제한된 계층에 한해서 이루어졌다. 60세 이상의 노인이나 병약자들이 주요 방문객이었고 동독정권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서독에 정착해 줄 것을 바라는 변칙적 이주를 조장해 왔다. 동독의 부담을 서독에 안기려는 의도였으나 서독사회는 이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해마다 1 ~ 2만명의 노약자들이 서독을 방문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서독에서 연금을 받고 생활했다.


이렇듯 원칙에 충실하며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의 부(富)를 나눌 수 있었던 서독사회의 단호함과 절제야말로 독일통일의 초석이었다.

IUED


 

◇ 프라하주재 서독대사관에 모여든 동독인들. 이들은 서독 정부의 배려속에 전원 서독에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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