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의 길

아데나워(Adenauer)와 이승만

박상봉 박사 2024. 5. 23. 11:00

"아데나워 목표는 자유 독일을 서구 민주주의 서클에 안착시키는 것이었고 통일을 위한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통일에 앞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었고 자유에 대한 보장이 국방 안보에 기여하는 일로 여겼다. 그는 평화로운 유럽 내에서 모든 독일인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통일이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이 과정이 오랜 시간을 요하는 일일지라도 감내할 일이었다. 아데나워에게 통일은 시간의 문제였지 통일 자체는 아니었다. 그의 사후 23년 만에 도래한 기적: 민족, 유럽 그리고 대서양을 통합한 아데나워의 아이디어가 1990년에 실현됐다."

- 귄터 부흐슈탑

 

전후 동서독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전승4국에 의해 점령 통치를 받았다. 소련은 동독에 소련식 중앙집권적 통제경제를 이식한 반면, 서독은 서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 서유럽 경제지원계획(마샬 플랜)을 마련해 150억 달러를 지원했다. 서독은 15억 달러를 지원받아 생산 및 산업기반 시설 마련에 투자해 기적과 같은 경제부흥을 이루어냈다. 

아데나워가 추진한 서방정책의 공로다. 

그는 또한 자유의 가치를 국가 최상의 목표로 정하고 자유통일국가를 꿈꿨다. 자유를 포기한 통일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통일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데나워와 이승만은 그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총리와 대통령에 선출될 때 나이가 두 사람 모두 73세 였다. 집권 기간도 14년과 12년으로 비슷하며 사망도 1967년과 1965년으로 모두 90세여 평생을 살았다. 두 정치인 모두 공산주의에 해박했으며  아데나워는 서방동맹으로 이승만은 한미동맹으로 공산주의에 대처했다. 

 

다만 아데나워의 꿈은 사후 23년 만에 이루어진대 반해, 이승만의 꿈은 아직 미완성이다. 서독인의 집단지성과 합리성이 대한민국 국민을 압도하는 것은 아닌지, 북한이 동독보다 프로파간다에 능하고 갈라치기에 능한 것은 아닌지, 서독 의회가 우리 국회보다 유능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