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의 길

[자유통일의 길](5) 모드로브, 공산동독에 대한 미련

박상봉 박사 2019. 8. 28. 16:45
[자유통일의 길](5) 모드로브, 공산동독에 대한 미련
 

, “독일 통일의 날은 자유가 승리한 날

모드로브, “조약공동체를 통한 과도기 거쳐야

한스 모드로브는 동독 공산정권의 마지막 총리다. 평소 에리히 호네커(Honecker)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해왔던 개혁 공산주의자였다. 1989 11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당(사회주의통일당)이 호네커를 제명하던 때, 모드로브는 드레스덴 지역 사통당 제1서기였다. 호네커 후임으로 총서기에 오른 에곤 크렌츠(Krenz)는 모드로브를 내각 총리에 임명,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새 임무를 부여받은 모드로브는 12 18, 서독의 헬무트 콜(Kohl) 총리의 드레스덴 방문을 위기 타결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 앞 광장에서 연설을 마친 콜과 소위 동서독 총리회담을 통해 동독 내 혼란을 극복하려 했다. 무엇보다 라이프치히 월요데모로 시작된 동독주민들의 개혁 개방 요구 및 당의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서독 정부의 도움을 구했다. 이와 함께 동독 공산당의 극도로 꺼려했던 통일협상을 카드로 내밀었다.

 

그의 통일카드는 동서독이 과도기로 조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라는 일종의 국가연합을 거쳐 11체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물론 11체제가 어떤 통일인지는 불투명했다. 콜은 이에 대해 통일을 포함한 향후 동독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는 동독에 민주적 절차에 따른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이 먼저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독일통일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공산독재권력과 공유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였다. 다른 대안이 없던 동독은 1990 3 18일 최초의 자유선거를 치르며 반공 변호사였던 드메지어 총리를 선출했다. 민사당(민주사회주의당)으로 개명해 출마했던 사통당은 16.8%의 득표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자유선거에 의해 구성된 인민회의는 동독은 서독의 연방체제에 편입됨으로 통일을 완성한다고 의결했다. 자유민주통일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1990 10 3일 독일통일의 날, 단상에 오른 콜 총리는 오늘 통일은 자유가 승리한 날이라고 역설했다. 이후 독일은 모든 혼란과 부작용을 극복하며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런 기적과 같은 독일통일을 과거 정권은 흡수통일, 천문학적 통일비용, 동서독 갈등과 같은 언어를 선점해 폄훼해왔다.

이렇게 잊혀졌던 모드로브가 2018년 9월 평양을 거쳐 서울을 방문, 17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통일독일의 경험과 한반도에의 함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모드로브는 통일은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한다며 ‘조약공동체’ 및 국가연합을 반복했다공산당을 수성하지 못한 개혁공산주의자의 한국판 한풀이다. 독일통일을 서독 점령군에 의한 통일로 규정해 왔던 모드로브의 사고는 독일 좌파당의 지지가 지속되는 한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모드로브의 조약공동체는 김대중 정권에서도 예의주시했던 통일방안이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12체제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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