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분단국의 運命]❺ 김정은의 조부 따라하기

박상봉 박사 2018. 5. 3. 16:06

[분단국의 運命]❺ 김정은의 조부 따라하기


 

김일성은 등거리 외교의 프로였다. 소련과 중국을 밀당하며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2018년 북한에 김일성이 환생했다. 조부의 외모를 닮은 김정은이 김일성의 등거리 외교를 벤치마킹한 모양이다.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美中 패권경쟁에 편승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양새다.

 

김정은에게 등거리 외교의 장을 마련해준 인물은 문재인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초부터 親中反美 노선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며 미국의 불신을 자초해왔다. 전시작전권 반환, 사드배치 지연, 반미주의자들의 등용 등 일련의 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 대통령 특보나 자문위원들의 반미 발언에서도 미국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 자명하다.

미국의 대한(對韓) 인식도 예전 같을 수 없다. 주한미국 대사는 1년 넘게 공석이다. 방한 중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문재인 정권의 역사관과 딴판이었다. 트럼프는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문재인에게 공을 돌리지 않는다. 미국이 주도한 대북 압박과 제재가 김정은을 대화로 이끌었다는 인식이다.

 

이미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2017년 대선 전후로 변화를 시사해왔다. 독일의 디벨트(Die Welt)310, 대선과 관련해 좌파 정권의 승리와 이 경우 한반도 내 반미감정은 더욱 악화될 것을 예견한 바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초청해 마라라고에서 골프 회동을 가질 수도 있다는 보도였다.

 

1년 후, 2018429일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큰 그림, 신령한 모습, 극적인 장면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연출이었고, 판문점 선언은 2007년의 변형에 불과할 뿐이며 구체적 행동지침이 결여된 과거의 판박이라는 보도다.

물론 이번 경우는 다를 수 있다. 약속을 되돌리기에는 김정은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 대북 군사공격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은 최대 목표인 체제를 유지하는데 물불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소련의 자리에 미국을 치환해 조부가 추진했던 등거리(양다리) 외교를 재연하려 한다는 보도다.

 

물론 트럼프의 입장에서 북한을 중국 공동전선에 포함시키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북한의 체제가 반서방적이다. 하지만 지정학적 차원에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을 끌어들여 대중 견제에 나서는 것은 전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중국 역시 최근 북한의 대미접근을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김정은은 이런 미중 사이의 틈을 직시하며 자신의 패를 하나 둘 던져가며 권력을 유지할 심산이다.

 

다만 대한민국이 지금이라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지지하고 한미동맹을 공고히 한다면 이런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 한미공조와 압박에 중국과 북한의 편법은 사라질 것이며 북한 비핵화는 빠른 시일 내 실현될 것이다. 반면에 한미동맹이 균열을 보이고 미국의 對韓 불신이 확대되면 미국은 김정은을 통해서라도 대중견제라는 국익을 실현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구한말의 상황이 재현될 소지가 크다. 분단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