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분단국의 運命]❷ ‘쩐(錢)의 전쟁’

박상봉 박사 2018. 4. 24. 19:27

[분단국의 運命]()의 전쟁

 

분단 40, 서독이 동독에 건넨 돈이 대략 1,045DM(당시 환율기준 약 52조원)에 달했다. 물론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검은 돈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정치범 석방 프로젝트였던 프라이카우프(Freikauf) 비용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34억 마르크의 2배가 넘었다. 통일 후 동독 외화관리 책임자였던 알렉산더 샬크-골로드코프스키가 총액 80억 마르크가 입금되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돈은 호네커의 개인계좌(한델스뱅크 계좌번호 0628)로 입금되었다. 정치범 1인당 25만 마르크가 지불된 셈이다. 이 돈으로 분단 40년 동안 3만 명 이상의 정치범을 석방해 서독으로 불러들였다. 서독의 이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셈이다.

 

1,045억 마르크 중 서독 정부의 몫은 30%에 불과했다. 70%는 민간차원에서 일어났다. 즉 개인을 통해 동독에 흘러간 돈이 정부 몫의 2배가 넘었다는 의미다. 민간의 몫 중에는 서독 주민이 동독을 방문해 가족이나 친척에게 전달한 선물이나 현금이 가장 컸다. 626억 마르크 규모로 민간 몫의 84%에 해당했다. 서독 교회가 동독 교회에 지원한 규모는 56억 마르크로 8% 정도다. 직접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의 90% 이상을 김정은 정권이 챙긴 것과 다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독 공산정권이 챙긴 수입도 있었다. 서독의 함부르크, 하노버, 뉘른베르크에서 서베를린을 잇는 통행구간에서 서독 주민이 사용한 돈도 온전히 동독 정권의 수입이었다. 이 구간을 이용하는 서독인들은 휴게소 식당이나 편의점을 이용할 경우, 서독 마르크를 지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동독 마르크가 없으니 당연할 일이었지만 4배 이상 비싼 값을 치렀던 셈이다.

 

정부 몫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서독-베를린 통행구간을 유지하는 비용이었다. 동독 정부는 서독 방문객에게 통행비자수수료, 도로통행료, 강제환전 등의 명목으로 경화(硬貨)를 챙겼다. 비자수수료는 1인당 5 마르크, 도로통행료는 차종에 따라 5~15 마르크를 부과했다. 강제환전금은 1인당 25 마르크로 1/4 가치에도 못 미치는 동독 마르크를 1:1로 교환해야 했다. 서독 정부는 비자수수료로 연간 850만 마르크를 지불했고 도로사용료를 포함해 분단 중 90억 마르크를 송금했다.

이외에도 이 구간 정비, 증축 등 유지를 위해 22억 마르크를 사용했다. 통일 전 이 구간을 이용한 서독인은 1년 기준, 2천만 명을 넘었고 승용차는 6백만 대, 화물차 1백만 대, 버스 10만 대 등이었다.

 

1982년과 1983년에는 서독 정부가 동독에 각각 10억 마르크와 9.5억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동독 정부는 차관의 조건으로 국경에 설치된 71,000기의 자동기관단총을 철거해야 했다. 서독의 이 제2의 베를린 봉쇄를 뚫어냈고 국가의 안보를 수호한 셈이다.

 

우리의 대북지원금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8조원 이상의 대북지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의 전쟁은 누구의 승리로 기록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