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분단국의 運命]❸ 사드 對 퍼싱2

박상봉 박사 2018. 4. 24. 19:29

[분단국의 運命]사드 퍼싱2

 

성주 사드배치는 단계마다 살얼음판이다. 초기부터 중국의 노골적인 반대에 부딪쳤고 1세트 6기를 반입하는 데도 1년 이상이 걸렸다. 처음 2기를 반입한 후, 대통령의 보고 누락시비로 나머지 4기의 반입이 지연되며 20179월에야 61세트가 반입 완료되었다. 한미 양국이 사드배치에 합의한 날짜가 201678일이니 12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하지만 그 후 관련 시설공사는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발전기를 대체할 전기공사와 400여명의 장병들이 거주할 시설공사가 답보상태다. 천장에는 비가 새고 숙소와 화장실도 포화상태다.

 

국방부는 지난 412일 시설공사를 재개한다며 경찰 병력 3천명을 동원해 장비를 투입하려 했으나 시위대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시위대는 150여명으로 전문 시위꾼들이었다. 큰 그물에 150여개의 구멍을 뚫어 목을 내밀고 바둑판 모양의 플라스틱 틀에 들어가 평화를 외쳤다. 말만 시위대일 뿐 잘 짜이고 훈련된 군대 같았다.

결국 신원불명의 시위대 150명 때문에 안보가 뒷전으로 밀리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易地思之, 미국이 이 사건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일까.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깨고 싶지 않을까.

 

공사가 무산되자 정부는 시민들과 합의해 공사를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국민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살인마 김영철을 남한에 불러들이고 백두혈통 김여정을 국빈대우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자행한 정부가 시민을 팔고 있다. 불리하면 시민 찾고 유리하면 국민 무시, 그야말로 시민팔이, 이헌령 비헌령이다.

 

우리에 앞서 분단을 극복한 서독에는 유사 사례가 없었을까? 분단국의 운명이니 없었을 리 없다. 다름 아닌 퍼싱2 공방이었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은 동독에 중거리 핵미사일 SS-20를 배치했다. 당시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나토에 이 문제를 상정해 이중결의안을 채택했다. 내용은 소련과 동독이 SS-20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관철되지 않으면 미국산 퍼싱2를 서독에 배치한다는 결의안이었다. 퍼싱210분 내에 모스크바를 잿더미를 만들 수 있는 공격용 미사일이었다. 더욱이 슈미트 총리는 진보정당인 사민당 소속이었다.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이 확인된 것이다.

 

슈미트의 결의안이 알려지자 평화운동이 불처럼 일어났다. 미국은 물론 프랑스, 영국에도 평화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수도 본에는 매주 평화운동가들이 집결해 시위를 이어갔다. 독일의 슈트트가르트(Stuttgart)에서 노이울름(Neu-Ulm)까지 100km가 넘는 인간 띠가 이어지기도 했다. 참여한 인원이 30~4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평화운동이 서독의 안보를 보장할 수는 없었다. 콜 총리가 퍼싱2 108기를 서독 전역에 배치한 후 동서독 사이 핵 균형이 이루어지며 국가안보가 실현되었다. 통일 후 콜 총리는 만약 슈미트 총리의 나토-이중결의안이 없었다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지도 않았고 통일의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