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화폐통합의 실체와 마력  

박상봉 박사 2017. 6. 1. 15:04

화폐통합의 실체와 마력

 

화폐통합은 성공적인 경제 통합을 위한 기초 작업이다. 안정된 화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경제 재건이 불가능하다. 물론 북한과 화폐통합은 남한으로서는 위기일 수도 있다. 급격한 통화량의 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원화를 손에 든 북한인들은 눌러왔던 소비욕구를 한꺼번에 분출할 충동을 느껴 생산이 동반되지 않은 소비만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남북 화폐통합은 어떤 목적 하에 추진되어야 할까? 우선 북한 경제재건의 토대가 될 금융 제도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의 금융은 "화폐 자원의 동원, 분배와 사용에서 형성되는 관계"로 정의되며 은행이 국가 재정을 공급한다. 비정부 경제주체 간 금융 거래는 제한되며 기업소와 협동체는 정부가 제공한 자금으로 운영된다. 가계소득의 일부가 저축을 통해 기업 투자로 연결되는 장치도 없다. 다만 부분적인 대부 제도가 있어 국가 은행이 기업소의 유동 자금 부족분을 일시적으로 메워주는 정도다. 이런 사회주의 금융의 한계로 기업은 금융권을 통한 투자금 조달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역 신용제도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송금과 외환거래 등과 같은 은행의 금융 서비스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업 정상화는 요원하다.

은행은 또한 기업소나 기관들에게 자금을 분배하며 생산 주체들의 경제 활동을 통제한다. 화폐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북한 당국은 가치 척도, 가치 보전, 지불수단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하나의 구호에 불과하다. 가격 체계가 계획의 일부로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사유재산제도를 금지하고 있어 화폐의 가치척도나 축적 기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북한의 공식 환율은 달러 당 2.2원 이지만 비공식환율은 200원 수준으로 10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상과 같은 경제적 차원과 별개로 남북 화폐통합은 특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 그것은 독재 정권 하에서 기아와 궁핍에 시달려온 북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의 차원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달러나 원화와 같은 경화는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화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 화폐는 북한 원화에게는 없는 구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화폐통합에 있어 이런 정치적 의미가 중요한 것은 결국 통일의 가능성은 북한 주민이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탈북자, 장마당 상인들에 의해 개혁 동기가 부여될 것이다. 또한 화폐통합은 좌절과 억압 속에 신음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통일 시대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통일된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완성되기 위해서 단일 통화를 갖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1871년 비스마르크 재상은 독일 제국을 건설했지만 당시에 7개의 통화권과 33개의 민간발권은행이 난립하던 통화 체계를 1873년 하나의 단일 통화권으로 통합하는데 성공함으로 제국의 통일을 완성함과 동시에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와 반대로 독일은 2차 대전이 끝나자 분단과 함께 두 개의 화폐가 생겼다. 19487월에 서독에 마르크화가 만들어지고 6주 후에는 동독에 화폐가 탄생한 것이다. 유럽연합이 정치적 통합까지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 앞서 유로화를 도입해 전 회원국들을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은 것도 유럽의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렇듯 화폐의 영향력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적으로 막강하다. 독일 역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 간에 다양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통일조약이 체결되기에 앞서 서둘러 추진했던 것이 동서독을 단일 통화권으로 묶는 화폐통합이었다. 독일은 화폐통합을 통해 통일을 국가적 과제로 재확인하고 이를 강력히 추진할 것을 대내외에 선포한 셈이다. 동독인들은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서독 마르크화를 손에 쥐고 경제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통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

199071일 단행된 화폐통합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담고 있었다. 화폐통합으로 동독 화폐는 폐지되고 서독 마르크화를 통용한다. 동독 일상적 소득인 임금, 봉급, 장학금, 임대료, 연금 등은 1:1 환율을 적용해 서독화로 지급한다. 동독인 보유 현금과 예금 재산은 2:1 환율을 적용한다. , 1인당 동독 화폐 4천 마르크까지는 1:1의 환율을 적용한다. 화폐 교환은 동독 금융기관 계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해외 거주자들의 재산은 특별 규정에 따른다.

통일 후 효율적인 북한재건을 위한 남북화폐통합도 불가피하다. 북한의 경우 북한 원화의 가치를 고려할 때 화폐통합이라기 보다 북한에 남한 원화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월급 2,000원으로 쌀 2kg을 겨우 살 정도의 구매력의 북한 화폐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경제적·정치적으로 최상의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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