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트로이한트 : 경제통합의 핵심

박상봉 박사 2017. 5. 19. 11:27

트로이한트 : 경제통합의 핵심

 

트로이한트는 동독 인민재산에 대한 사유화 담당 기관이었다. 사유화는 국가의 계획과 통제에 따라 운영되던 경제를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동서독 경제통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작업이었다. 사유화는 영어로 privatization(독일어 Privatisierung)으로 민영화라는 뜻이지만 사유화에는 보다 특별한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이 개념 속에는 국가의 관리 하에 있던 인민재산을 민간에게 이양함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이런 역사적 의미를 포함한 사유화 작업은 이미 그 일의 양적·질적 규모로 보아 상당한 갈등과 혼란을 내재하고 있다. 또한 인민재산을 민간에게 이양하는 일은 공산권력의 실질적인 기반을 해체하는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사유화 과정에서 동독 권력집단의 반발이 거셌고 트로이한트의 실질적인 초대 책임자였던 로베더 청장은 암살되고 말았다.

로베더는 관계와 사업계를 두루 거치고 특히 위기 관리 매니저로 정평이 나있던 인물이었다. 콜은 로베더를 발탁해 위기의 동독 경제를 재건하려 했지만 199041일 동독 슈타지의 지원을 받은 적군파의 총격에 생을 마감했다. 이런 충격에도 불구하고 트로이한트는 부청장이었던 비르기트 브로이엘을 대표로 임명하고 사유화 작업을 강행했다.

사유화 대상은 기업, 금융기관, 호텔, 음식점, ·소매업, 토지 및 농지, 각종 임야, 주택 그리고 정당이나 군대 및 각종 단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들이었다. 동독 재건은 인민재산을 매각해 얼마나 많은 자본을 조성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동독 기업을 인수하려는 투자자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동독 경제를 과대평가했던 서독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론에 빠져 해외자본 유치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4년 말로 임무가 종결된 트로이한트의 실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트로이한트가 관리한 동독 기업은 8,500, 노동자의 48%에 해당하는 410만 여명이었다. 트로이한트는 계획 경제의 특성상 대단위 기업이었던 8,500개 기업을 매각이 용이한 규모인 23,500여 개의 기업으로 분할했다. 하지만 매각 현장에서 또 다시 재분할되는 과정을 거쳐 4년 동안 15,000여개 기업을 매각했다. 이 중 해외 투자는 860건으로 6%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사유화로 불리우는 도·소매업, 호텔, 음식점, 극장, 약국, 서점에 대한 매각 건수는 약 25,000건에 달했다. 부동산은 토지 46,500, 농지와 임야 65,700핵터아르가 매각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트로이한트가 기업 등 인민재산을 매각해 얻은 성과는 판매대금 총 670억 마르크(대략 35조원), 고용 150만 명과 2,110억 마르크(110조원)에 달하는 투자약속이었다. 하지만 트로이한트의 실적은 당초 흑자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총 2,564억 마르크(130조원)의 적자로 마감되었다. 동독 경제와 기업의 경쟁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던 것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트로이한트의 사유화 과정에서 나타났던 부정, 부패, 사기 등과 같은 예기치 못한 불법행위들도 간과할 수 없다.

독일의 사유화 작업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독일이 범했던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 북한 사유화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 사유화 작업과 관련해서 독일로부터 얻는 교훈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는 냉철한 머리로 대변되는 합리적 사고와 결정에 대한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따뜻한 가슴'으로 경제통합에서 나타날 부작용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대처한다는 원칙이다.


통일 한국의 체제와 국가 운영 시스템의 틀을 만드는 작업은 냉철한 이성을 요구한다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실업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용을 베풀고 보완책을 마련해 어려움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통일 한국의 체제를 논하는 과정에서부터 민족을 내세우고 타협을 주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통일은 1국가 1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타협과 대화의 대상은 늘 김정은과 그 일당들이다. 다른 한편 우리가 돌봐야 할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하리 만큼 냉정하다. 왜냐하면 김정은 정권을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 등 제3국을 유리방황하는 탈북자들을 돕는 일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고, 우리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탈북자들을 방치한 채 성공적인 통일과 통합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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