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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판 사드논쟁1: 에곤 바 vs 헬무트 콜

박상봉 박사 2017. 4. 12. 19:38

독일판 사드논쟁1: 에곤 바 vs 헬무트 콜

 

 

디차이트 "나토 이중결의안이 없었더라면 소비에트 연방은 여전히 건재했을 것이다"

 

 

- 나토 이중결의안에 따른 미국 핵미사일 퍼싱2 배치에 대한 헬무트 콜 총리의 고백: "나토 이중결의안이 없었다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1990년 통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1979년 12월 12일, 브란트의 후임으로 선출된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나토 회의에서 "소련이 유럽에 기배치된 핵탄도 미사일 SS-20을 현대화하려면 나토와 협상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유럽은 미국의 핵미사일 Pershing II를 배치한다는 결의안을 제안해 통과시켰다". 소위 '나토 이중결의안'(NATO-Dopelbeschluss)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이 제안을 거부하고 동독에 현대화된 SS-20을 배치하자, 슈미트에 이어 총리에 선출된 헬무트 콜은 서독에 미국의 Pershing II의 배치를 강행했다. 이러자 당시 서독을 휘감던 '평화운동'(Friedensbewegung)의 수십만 명 시위대의 항의시위가 있었다. 

소위 독일판 대화론자 에곤 바는 이 조치를 '왜곡된 사고의 상징'이 빚어낸 참사라고 몰아 부치고 서독 정부가 전쟁상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독일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 디차이트(Die Zeit)는 2009년 12월 12일 "나토 이중결의안이 없었다면 소비에트 연방은 여전히 건재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통일을 완수해낸 헬무트 콜 총리는 200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을 맞아 "'나토 이중결의안'이 없었다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1990년 독일통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2017년 대한민국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사드를 둘러싼 야당의 주장이 에곤 바를 연상시킨다. 과연 이 위기상황에서 한국판 헬무트 콜은 누가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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