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서독 기본법 : 23조 vs 146조

박상봉 박사 2017. 3. 28. 10:00

서독 기본법 : 23vs 146

 

 

동독 땅에서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자유선거의 최대 쟁점은 통일 문제로 어떤 통일을 추진하며 어떤 속도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동독 기민련은 서독 기본법 233)에 따라 동서독 통일을 추진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에 반해 동독 사민당은 기본법 146조에 따라 통일 헌법을 제정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독일통일을 완성한다는 입장이었다.

사통당 후신인 민사당은 통일 전 단계로 동독과 서독이 1:1로 국가연합을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동맹 90은 통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단계적 통일방안을 내세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다. 동독 사민당은 서독 사민당의 통일방안, 동맹 90은 서독 녹색당의 통일방안을 대변했다. 선거 결과 동독 주민들은 독일연합에 48%, 사민당에 21.9%, 민사당에 16.4% 그리고 동맹 90에는 불과 2.9%의 표를 선사했다. 독일연합의 선거 포스터에는 통일반대론자들에게 기회를 주지말자는 구호와 함께 사회주의여 안녕’(Nie wieder Sozialismus)을 전면에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선거결과 압승한 독일연합의 기민련(득표율 40.8%)은 로타 드메지어(Lothar de Maiziere)를 중심으로 사민당(득표율 21.9%)과 자유민주연대(득표율 5.3%) 등을 묶어 대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부총리 겸 대변인에는 앙겔라 메르켈이 임명되었다. 새로 구성된 내각과 의회는 서독과의 통일을 전제로 중요한 현안들을 서둘러 처리했다. 서독과의 화폐·경제·사회통합, 비밀경찰 슈타지(Stasi) 해체 위원회 설립, 그리고 기본법 23조에 따라 서독의 연방체제에 편입해 통일을 이룬다는 핵심의제들을 의결했다.

1990102일 통일 전야제에서 드메지어 총리는 이별은 슬픔을 의미하지만 동독과의 이별은 기쁨이요 희망이라는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임기를 끝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상임지휘자이자 월요데모의 주역이었던 쿠르트 마주어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를 연주했다.

 

우리나라에도 법조계를 중심(中心)으로 통일헌법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통일된 한반도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충분하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지자체의 특성에 따라 일부 수정해야할 내용이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북한으로 확대 적용하는데 이의가 없다. 통일 후 처리해야할 사안이 산적한 데 굳이 헌법까지 개정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헌법 4자유민주주의통일 조항은 통일과 함께 그 의미가 사라져 삭제하면 될 것이다.

그 외에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법적 절차에 따라 바로 잡으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독일의 경우 통일 과정에서 서독 형법 218조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218조는 낙태금지에 관한 법으로 서독 사회는 임신중절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이에 반해 동독은 줄곧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해왔다. 결국 동서독 정부는 통일협상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낙태관련 조항을 3년간 유예할 것을 합의해 갈등을 조정해야 했다. 즉 동독에 한해 향후 3년간 218조 낙태금지법을 유예한다는 결정이었다.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서독 여성들이 동독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1992년 유예기간이 1년 남은 해에는 서독의 직장 여성은 물론 외국인 여성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동독으로 몰려가 낙태시술을 하려는 바람에 동독 사회 전체가 낙태 열풍에 휘말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서독으로 파견된 모 언론사 주재원도 동베를린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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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의 기본법은 통일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기본법 23조는 동독은 서독 기본법 효력 범위에 편입됨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규정이고 146조는 통일헌법을 제정해 법적인 틀을 만들어 통일을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동독 인민의회는 19908월 동독은 기본법 23조에 따라 서독 연방에 편입할 것을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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