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원탁회의(Runder Tisch) : 과도정부

박상봉 박사 2017. 3. 25. 18:26

원탁회의(Runder Tisch) : 과도정부

 

25년전 동독, 중앙원탁회의가 조직되었다. 

사통당, 동독 위성정당, 시민단체들이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의 평화적 전환을 위해 의견을 결집했다. 그리고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를 위한 조건을 창출해냈다. 

-  민주주의 학교 -


동독 급변기에 조직된 시민운동 중 가장 두드러진 단체는 뉴포럼이었다. 뉴포럼은 항아리를 넘치게 한 마지막 물한방울이라는 정의에서 나타나듯이 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의 절정으로 공산당을 몰락시키는데 최후의 일격을 가한 반체제 모임이었다.

니콜라이 교회와 겟세마네 교회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이 교회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라고 한다면 뉴포럼은 교회 밖에서 시작된 최초의 전국 규모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뉴포럼은 동독의 전환기인 8999일 전국 11개 지역에서 30명이 참가한 가운데 결성됐다. 동독 대표적 반체제 인사이자 1982년 타계한 화학자 로베르트 하페만이 최후까지 살았던 그륀하이데 소재 자택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들은 봉기 89’ 선언을 채택하고 공동 서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모임은 결성 초기부터 당과 슈타지의 표적이 되었고 모든 과정이 99일자 슈타지 보고 문서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이 기록에는 당시 창설 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함께 참석자들의 인적사항이 포함되었다. 평화주의자이자 반체제 인사였던 베어벨 볼라이, 옌즈 라이히 등 반체제 인사들은 슈타지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에 참가했으며 다른 참가자들도 블랙리스트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 역사적 현장에 동참했다. 이들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그리고 폴란드 솔리다르노스크와 같은 개혁 및 시민운동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 후 뉴포럼 초기 참가자들의 집에는 연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더 많은 체제 비판 세력과 민주화 세력들을 응집해냈다. 30명의 창립 발기인들의 집에는 연일 동참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창립 선언 '봉기 89'에는 2달 만에 20만 명이 서명하게 되었다.

이 중 1만여 명은 정회원이 되었다. 창립 선언에는 국가와 사회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주의를 개혁하고 이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모두가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89년 가을 절정을 이룬 동독 주민들의 반공산당 투쟁은 두 가지 결실을 이뤘다. 하나는 동서를 물리적으로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탁회의라고 하는 시민운동 연합체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원탁회의는 호네커 실권 후 총서기에 오른 크렌츠 집권기인 1989127일 정식 발족되었다. 정치적 격변기에 동독 무혈혁명을 주도했던 시민단체와 교회 대표들이 주 멤버였다. 원탁회의가 동독 격변기 실질적인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자 개혁 공산주의자로 총리에 오른 모드로브는 1990128일 정부도 원탁회의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국가 통치는 원탁회의와 모드로브 정부의 이원 체제 하에서 이루어졌다.

실로 원탁회의가 동독 격변기 과도정부의 역할을 넘겨받은 감격의 순간이었다. 원탁회의는 공산당 SED 일당독재를 청산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을 보장할 것을 결의했다. 또한 당의 창과 방패로 공산권력의 시녀였던 슈타지의 해체를 공론화하고 헌법 개정과 조속한 시일 내에 동독 내 자유선거를 실시할 것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1990318일 동독 땅에 최초로 자유 민주선거가 전격 실시되었다.

자유선거에 참여할 동독 유권자는 총 1,220만명이었고 월요데모을 주도했던 시민운동가들이 대거 입후보했다. 공산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동독 기민련, 사민당, 독사련, 동맹90에도 시민운동가들이 참여했다. 원탁회의를 주도했던 뉴포럼, 민주주의 지금은 다른 시민단체인 이니셔티브 평화와 인권과 함께 동맹90’을 결성해 선거에 나섰다. 민주봉기는 동독 기민련과 독사련(서독 기사련과 유사)과 연합해 독일연합을 결성했다. 동독 위성정당, 독일포럼정당도 자유민주연대를 만들어 출마했다. 이밖에 동독 사통당 후신인 민사당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치러진 자유선거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권을 수립해 분단 이후 동독을 통치해온 사통당 공산정권을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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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기 89(Aufbruch 89)는 국가(Staat)와 사회(Gesellschaft) 사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탈출하는 상황에서 동독 헌법 29조에 따라 대중의 정치적 이해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권리를 찾고자 시민들이 일어서야 한다고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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