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예멘 통일의 교훈

박상봉 박사 2017. 3. 16. 09:12

예멘 통일의 교훈 


   

             

'좀비국가', Die Zeit, 2010.12.9.

 

체제와 무관하게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지분을 나누고 합의 하에 통일을 이룬 나라가 예멘이었다. 비록 일천하기는 했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했던 북예멘과 사회주의 남예멘이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어 냈다. 인구와 경제력에서 우위를 점유했던 북예멘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남예멘에게 나머지 지분을 할애했다. 이에 따라 5인의 대통령 평의회로 구성된 과도 정부에는 5명 중 3명은 북예멘, 2명은 남예멘 출신이 참여했다. 대통령은 북예멘, 부통령은 남예멘에서 맡았다. 39명의 내각 중 20명이 북예멘 출신이었다.

통일 의회는 인구 비례에 따라 북예멘 출신 159, 남예멘 출신 111명으로 구성되었다. 즉 북예멘이 통일 과도정부를 주도하되 남예멘도 무시못할 견제세력의 지위를 보장받았다. 3년간의 과도정부가 끝나고 1993년 총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결과 남예멘 사회당은 3위를 차지하게 되자 남예멘 정치 지도자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반발은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고 살레 대통령이 이끄는 북예멘이 승리하게 되었다. 남예멘 사회당은 제거되고 북예멘 주도의 재통일이 이루어졌다.

예멘 통일이 실패한 이유는 첫째, 남북 간 대등한 기계적인 통합에서 찾아야 한다. 유지호 전 예멘 대사는 남북 수뇌부는 두 정부 간 기계적인 병합을 일단 이루어 놓기만 하면 통합과정은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믿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계적인 통합으로 정부는 비대화되었고 남북 간 관료들의 협조도 어려웠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 나라가 동등한 지분으로 통일 정부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민족이라는 우산 아래 체제와 이념이 수용될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은 허구였다. 통일과 나아가 통합 과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이미 검증된 효율적인 체제를 통일된 국가 시스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김정은에게 통일 한국의 50%의 지분을 허락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참담할 것이다. 즉 통일은 성공한 체제, 효율적인 이념이 주도해야 하고 실패한 체제의 정치인들은 통일의 지분을 포기함으로 그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북한의 전자회사가 합병하기로 했다고 하자. 합병한 두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북한의 전자회사가 삼성전자에 편입되어야 한다. 북한 전자회사의 경영진은 기존의 경영권을 삼성전자에 인계해야 한다. 반대로 두 회사가 각각의 지분을 요구한다면 합병된 회사가 성공할 확률은 급감하게 될 것이다.

최근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과 통준위 내에서도 흡수통일 불가라는 허구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주장했던 흡수통일 불가론의 재탕이다. 김정은 3대 세습독재가 등장하고 핵무기의 소형화가 거의 완성된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김정은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합의통일 공식은 변함이 없다. 더욱이 김정은의 광기로 측근 70여명이 숙청당하고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이 공개 처형되었으며 고모 김경희는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미국은 물론 중국의 대북 전문가들도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한다. CNN이 북한 정권은 3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보도한 데 이어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 붕괴를 예견했다. 급기야 뉴욕 타임스 마저 2015.5.18일 사설을 통해 북한 붕괴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독일 언론 역시 북한 붕괴에 맞장구를 쳐왔다.

권위있는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2010129일 북한을 좀비국가(Zombiestaat)로 보도하고 있다. 수명을 다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내세워 하루하루의 삶을 연장해가고 있지만 언제든지 숨통이 끊어질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Berliner Morgenpost)는 이미 10여 년 전 북한의 비밀친구들이라는 기사를 다룬 바 있다. 북한은 중국, 일본, 심지어 남한에 비밀친구들을 두고 있어 절대절명의 위기에 산소 마스크를 씌워주어 삶을 연장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국제사회의 인식이 이렇듯 변화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통준위는 김정은 체제는 안정되어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주변에는 아무도 북한 붕괴를 거론하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대비팀도 없다는 것이다. 통준위의 유일한 통일 준비는 광기의 김정은과의 남북 대화다. 한마디로 직무유기다. 아직도 상이한 이념과 체제의 두 나라가 기능주의적으로 통일할 수 있다는 허구를 믿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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