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통일은 가치의 문제

박상봉 박사 2017. 3. 7. 22:12

통일은 가치의 문제

     


독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가치들이 있지만 특히 나도 살고, 너도 살자”(leben und leben lassen) 만큼 전후(戰後) 독일을 성숙하게 만든 가치도 없다. 독일 사회가 나치의 치욕적 역사로부터 배운 가치와 교훈으로 통일의 그림자가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다. 통일 25년차 아직도 통일의 부작용과 후유증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작년 한 해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수용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페트릭 헨리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승리를 이끌었고 링컨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인권과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다. 또한 미국은 6·25 전쟁에 178만 명의 젊은이들을 한반도에 파병해 4만 명 전사, 1만 명 실종, 10만 명 이상 부상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이들의 헌신을 기리고 있다. “조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한 조국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at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at they never met).” 이것이 국가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 힘이 오늘날 미국의 힘의 원천이다. 국가는 이들 젊은이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한 가치있는 희생이었음을 영원히 기리고 교육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 준비에는 왜, 통일이며,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포함되어 있을까. 이런 통일의 가치에 대해 침묵하며 통일을 주판알 튕기듯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통일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통일비용을 부담하고 희생을 치를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감당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은 문제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드는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며 반문하고 있다.


우리는 독재체제 하에서 신음하는 24백만 북한 동포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고난의 행군을 밥먹듯하며 죽어가는 형제들에게 적어도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통일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통일 대박은 이런 과정에서 주어지는 선물인 셈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국민을 볼모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연일 도발을 일삼는 세습독재자에게 그저 양보하고 대화만 구걸하는 정치권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슨 통일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통일은 24백만 북한동포를 독재의 굴레에서 풀어주고 빈곤에서 해방시키는 즉 70년 비극의 분단사를 마감하는 사건이어야 한다.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의 실체

얼마 전 우리나라가 2016년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으로 선출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며 충격을 받았다. 의장국이 되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북한인권법 조차도 제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에 걸맞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1990년대 후반 3백만명이 아사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해왔다.

정치범 수용소에는 20만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국을 유리방황하며 꽃제비로 살아가는 탈북자의 숫자도 10만 명 이상이다. 특히 여성 탈북자들의 인권상황은 최악이다. 인신매매법의 표적이 되어 강제결혼, 낙태, 감금 등 인권 사각지대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런 북한의 인권상황을 방관할 수 없어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2004년과 2006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며 유엔은 2003년부터 2015년 까지 거의 해마다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유럽, 캐나다에서도 북한의 인권상황을 우려하는 선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정식의제로 채택해 논의하는 일도 있었으며 유엔이 서울에 COI(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물론 대북 이슈를 둘러싼 대부분의 현안에 대해 여야는 물론 보수 진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진보단체의 주장이 북한과 유사한 것은 물론 민주노총의 시위에는 이석기 석방과 같은 종북적 정치성향의 목소리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 남남갈등의 이면에는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통일전략전술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는데 그 핵심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남남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미 누구나 동의하듯이 우리나라 통일의 최대 장애는 남남갈등이다. 북한 이슈에 대해 어느 하나 동일한 목소리가 나오는 법이 없다. 북핵, 미사일, 탈북자, 북한 인권, 정치범 등 북한 발 이슈에 대한 여야의 주장은 늘 평행선을 긋고 있다. 탈북자를 배신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의 효과가 적중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또 하나의 통일전략전술인 평화협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북한의 대표적인 전략전술이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미국을 물고 늘어져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전략전술인 셈이다우리가 통일의 가치에 무관심하고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외면한 채 남북대화에 매달린다면 이런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은 베트남의 통일과 같이 한반도를 붉게 물들일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RO(Revolution Organization)를 조직해 내란음모를 꾸몄던 것도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했다면 굳이 국정화 교과서 문제에 개입해 황교안 총리를 3행시에 빗대 ()당하고 ()활하고 ()하무인으로 폄하하고 남한 내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북한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교류 협력을 강화해 통일을 이룬다는 점진적 통일론을 주장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이자 결단이다. 기회가 오면 결단해 잡는 것이지 득실을 따져 선택할 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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