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다시보기

서독의 대동독정책 및 시사점(V): 슈타지의 브란트 보호공작

박상봉 박사 2017. 2. 9. 11:18

서독의 대동독정책 및 시사점(V): 슈타지의 브란트 보호공작

 

우리나라에 알려진 독일통일은 왜곡으로 얼룩져있다. 독일통일에 대한 장맛은 모른채 구더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첫째, 많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이념적으로 동독이 서독 체제에 편입함으로 완성된 통일을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 독일어 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용, 재인용을 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가 확대되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설계한 에곤 바에 대한 과도한 평가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브란트의 동방정책, 콜의 통일정책으로 이어지는 통일의 과정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V.

독일의 통일 등식을 정리하면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콜의 통일정책의 합(독일통일 = 아데나워 서방정책 + 브란트 동방정책 + 콜 통일정책)이다. 아데나워(Adenauer) 총리의 서방정책은 전범국의 오명을 씻고 서방과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경제적으로는 전후 피폐했던 경제를 마샬 플랜 등 서방과의 협력을 통해 회복시킨 공로가 크다. 반면에 브란트(Brandt)의 동방정책은 아데나워 시대에 이루어낸 경제력과 서방과의 돈독한 관계를 기초로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연장에서 동서독 기본합의서도 체결했다.

다른 한편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갈등도 많았다. 1970년 소련과의 국교 정상화를 비롯해 폴란드, 체코 및 동독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에 보수 야당의 반발이 컸다. 특히 폴란드와의 조약에서 국경 문제를 양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민들은 분노했다. 패전으로 강점당한 슐레지안 영토를 무조건 폴란드에 양도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19711217일에는 동서독 최초의 협정인 서독-서베를린 통행협정이 체결되었다. 베를린 장벽으로 동독에 고립된 서독인 마을과의 통행로도 확보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컸다. 수억 마르크의 경화가 동독에 유입되었고 통행인과 차량대수에 따라 추가 사용료도 해마다 지불해야 했다.

보수는 물론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자민당도 술렁였다. 에리히 멘데(Mende), 게어하르트 키인바움(Kienbaum) 4명의 자민당 의원들이 탈당, 또는 기민련으로 이적했다. 사민당 내에서도 반발하는 의원이 있었다. 허베르트 훕카(Hupka) 의원은 당을 떠나 기민련으로 이적했다.

1972424, 야당인 기민련/기사련이 라이너 바젤(Bazel)을 총리 대안으로 내세워 하원에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신임투표는 절대과반수인 249표에서 2표가 부족한 247표를 얻어 부결되었다. 하지만 자민당의 연정을 파기해 하이네만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했다. 19721119일 조기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예상과 달리 사민당이 승리해 브란트는 총리직에 복귀했다.

총리에 복귀한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더욱 밀어붙였다. 197212월에는 동독과의 기본합의서도 체결했다. 여당인 사민당은 동서독 교류협력의 토대를 마련한 일로 환영했던 반면, 기민련/기사련은 반발했다. 이번에는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본합의서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행위요, 통일을 포기한 것이라는 문제제기였다. 국민들은 동독이 내정간섭을 내걸면 동독 내 인권침해나 정치범을 돌보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헌재도 1973731일 합헌 판결을 내렸다. 합의서가 동독을 국가로 승인한 것이 아니며 통일의지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이후 브란트의 총리 2기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1973년 여름 브란트 총리의 불신임투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동독이 투표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율리우스 슈타이너(Steiner) 의원이 사민당 원내대표였던 칼 비인란트(Wienand)로부터 5만 마르크를 받고 불신임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졌다고 고백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투표과정에서 동독의 슈타지가 개입한 사실도 밝혀졌다. 동독이 'Unternehmen Brandtschutz'(브란트 보호공작)을 하달하고 야당의 에리히 멘데(Mende), 레오 바그너(Wagner) 의원 등을 매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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