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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65: 민주화, 권력 쟁취의 수단(?)

박상봉 박사 2007. 10. 1. 09:58

해설65: 민주화, 권력 쟁취의 수단(?)


미얀마에 민주화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44년 간 지속된 철벽같은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려 12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아웅산 수치여사다. 철통같은 군사정권이 한 가냘픈 여인에 의해 균열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힘이요, 진리의 힘이다.


북한은 미얀마 못지않은 군사독재정권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해 독재자는 살찌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3대째 세습독재를 획책한다는 점과 이런 독재체제가 이미 6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얀마와 다르다.


냉전은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분된 국제질서를 의미했다. 미국, 영국, 서유럽 등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한 축을 이루고 소련, 동유럽 등 사회주의 사회가 다른 한 축을 이루며 이념적으로 대립되었던 시기였다. 이런 냉전이라는 국제질서는 20세기 말이 되어 급격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철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고 서구 사회의 자유와 경제적 풍요로움이 전해짐에 따라 정치적 억압과 빈곤에 고통 받던 대중의 반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이런 대중 반란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이념적 대립이 사라지고 민주화와 경제적 실용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우즈베키스탄이나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그리고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 크로아치아 등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미얀마에 민주화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승려 집단이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며 지난 44년 간 지속된 부패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시위가 일주일 이상 이어지자 독재정권은 드디어 무력을 동원해 이미 수 십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지난 88년 민주화 운동이었던 ‘랑군의 봄’ 때의 상황과는 다르다. 도덕적 승려집단들이 주도적으로 저항해서 라기 보다 냉전 이후 민주화라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이번 유혈 민주화 시위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세습독재자 김정일의 간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이미 반세기 넘게 일가족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에 민주화의 쓰나미가 몰아칠 날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4월 26일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사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지 25년 만에 전통적 우호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독재체제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재가 3대에 걸쳐 추진되고 있다. 여기 저기 성혜림 사이의 장남 김정남, 고영희 사이의 김정철, 정운이 김정일의 후계를 두고 권력투쟁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시대적 흐름과는 달리 우리나라 자칭 민주화 세력들은 북한의 민주화에 냉냉한 반응을 보인다. 10월 2일 평양방문에 올인할 뿐이다. 햇볕정책 전도사로 알려진 DJ는 갑자기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느닷없이 향후 중미 관계에 대해 “미국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계속 가하면 중국이 군사대국화 하여 민주화의 가능성이 죽고, 반면에 군사적 압력이 견딜만하게 느낀다고 생각하면 민주화의 힘, 즉 국민적 지지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지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또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더욱이 햇볕정책은 북한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고 북한과 공존하는 것이라며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있다.


일부 위장된 민주화 세력의 시각이 묻어나는 주장이다. 즉 중국이나 북한이 군사강국화의 길을 걷는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의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이들 자칭 민주화 세력들의 민주화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아니라 권력 쟁취의 수단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세력들이 집권한 후 벌어지는 광경들이 그들의 민주화는 집권의 수단이었음을 명확히 해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일이 스탈린 세습독재 체제와 공조하고 정치범, 납북자, 국군포로들이나 탈북자의 인권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코미디 같은 사실은 민주화 세력들이 이제는 집권의 수단으로 김정일을 택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김정일과의 회담을 위해 5억 달러를 지불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의제도 일정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채 만나만 주면 감지덕지라는 식의 두 번째 김정일과의 만남이 그렇다.


하지만 이제 이런 유치한 정치쇼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DJ 방미에 맞추어 재미교포들의 반 DJ 시위가 눈에 띈다. DJ가 김정일 폭압정권을 지탱해주고 있고 핵 실험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재미교포들의 이런 시위는 전두환 정권의 방미에 이어 두 번째라고 한다. 이제 자칭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가 집권의 수단이 아님을 증명해야할 처지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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