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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63: 구한 말과 21세기

박상봉 박사 2007. 9. 16. 17:56
 해설63: 구한 말과 21세기


1904년 러일전쟁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소규모의 세계전쟁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가 한편이 되고 일본과 미국 영국이 다른 한편이 되어 한반도 땅인 조선에서 벌인 전쟁이었다. 영국의 점령 하에 있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던 러시아 발트 함대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7개월 만에 대한해협에 도착했고 일본 해군에 의해 초토화 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조선이라는 나약한 먹이거리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강대국들이 동참했고 가장 큰 피해를 겪은 민족이 조선사람들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조선은 친러파, 친일파가 대립하고 수구파와 개화파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조선 땅이 풍전등화의 위협에 처해있었음에도 당파 싸움은 그치질 않았다.


왜 이런 비극을 겪어야만 했을까. 국제정세에 무지한 채 집안싸움에만 혈안이 되어있던 조상들의 무능력이 빚어낸 결과이다. 쇄국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랑캐 타령만 하며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꾸어야 했고 힘이 없으면 빌렸어야 하는데 양반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이런 구한말의 상황이 오늘날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익 챙기기가 노골화되고 있지만 정작 남북 모두 주변 국제정세에 무관심해 보인다. 민족끼리라는 닫힌 민족주의 구호 속에 반미주의가 난무한다. 반미주의에 편승해 러시아와 중국에 접근해 보려 하지만 당사국들은 별 관심이 없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음흉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고 중러 모두 북한을 빌미로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려는 빤한 의도만이 드러나고 있다.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가운데 남한이라는 지렛대를 잃어버린 미국은 북한을 직접 손보기에 나서고 있다. 북미 협상을 통해 핵을 해결하고 북미 수교를 통해 거대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남한의 이익은 별로 고려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으로서 가장 좋기는 북한을 친미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고 친 서방을 표방했던 것과 같다.


우리가 민족끼리의 구호 속에 함몰해 있는 가운데 이렇듯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동북아 힘겨루기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01년 6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4개국이 상해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를 출범한데 이어 올해 8월에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상해협력기구가 합동으로 “평화의 사명 2007” 이라는 합동 군사 훈련을 단행했다.


이에 맞서 아시아 태평약 지역에는 미국, 일본, 호주의 3각 군사동맹을 토대로한 공동 안보협력이 구체화 되고 있다. 여기에 인도와 싱가포르가 가세해 9월 4일부터 9일까지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이 구상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한국 대신 호주가 전략적 파트너로 참가하는 모습니다. 중국은 자국을 포위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안보가 걱정이다.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동맹과 협상을 통해 공동안보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과연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지 답답하다. 반세기 한미동맹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고, 해양 동맹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임을 자처해온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말로 이루는 평화는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馬耳東風(마이동풍)이다. 우리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다는 자기 위로는 나약한 국가의 나약한 권력의 궤변에 불과해 보인다.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라는 자기위로식 평화주의가 또 다시 나라를 궁지로 몰아넣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화로 핵을 포기시키고 대화로 동북아 균형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도취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IUED

             

           러일전쟁 중 일본함대가 러시아 발트함대를 공격하고 있다. 1904년 10월 출발한

           발트함대는 7개월만인 1905년 5월 7개월만에 대한해협에 도착, 일본해군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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