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남북한 사회통합을 대비한 우리의 과제(VI)

박상봉 박사 2007. 8. 13. 12:15
 

남북한 사회통합을 대비한 우리의 과제(VI)


III. 

남북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두 축은 정치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에서 통합의 기초를 놓는 것이다. 전자는 북한 사회에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것이고 후자는 통일된 한국사회에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줄 기초를 닦는 것이다. 즉 북한경제를 성공적으로 재건해 내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두 기초 위에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어떤 사회를 목표로 하든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제도적 기초작업이다.



1. 민주적 권력창출

(독일의 학자들은 과거 동독을 “Ein Staat ohne Legitimitaet" "정당성없는 국가”라고 정의하며 통일독일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성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Karl Wilhelm Fricke, Ein Staat ohne Legitimitaet, E. Jesse/ A. Mitter(ed.), Die Gestaltung der deutschen Einheit, 1992, pp. 44~48.)


내적 통합의 기초는 북한에 민주적 절차를 통한 권력을 창출해내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합법적인 권력이라야 통일을 우리의 주권문제로 주장할 수 있으며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북 사회통합의 기초는 북한 내 민주적 권력을 창출해 내는 데 있다. 북한 사회가 동요하고 정치적 혼란이 초래되어 우리의 개입이 가시화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할 일은 사회적 폭력사태를 방지하고 서둘러 북한 주민들이 참여하는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일이다. 이 일은 북한 내 민주적 정치세력을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비교적 거부감없이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오히려 북한의 공산당 세력들이 이에 대해 강력히 거부할 것이다. 공산당은 스스로 김정일을 축출하고 개혁과 개방의 주도권을 선점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

하지만 이를 방관할 경우 북한의 민주화는 오랜 동안 불가능할 것이고 사회주의 개혁파들이 득세해 통일의 기회도 무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북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의지일 것이다.(동독의 경우 공산당의 독재정치가 사라지게 되자 주민들의 의견이 중요한 변수로 대두된 것으로 보아 북한에도 대동소이한 일이 전개될 것이다. 이런 혼란기에 북한주민들의 아래로부터의 힘을 이용해 북한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의 기회를 부여잡아야 한다.)

동독의 경우 대량탈출과 시민들의 저항으로 위기에 처한 동독공산당이 스스로 호네커를 축출하고 에곤 크렌츠를 총서기로 선출해 당 주도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동독인들은 크렌츠는 물론이고 이후 등장한 개혁공산주의자 모드로브의 개방개혁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동독인들은 오로지 “Wir sind ein Volk" "우리는 하나의 민족” “Deutschland, einig Vaterland !" "독일, 통일된 조국”을 외쳐댔다.(동독인의 요구는 40년 억압정치에 맺힌 한을 푸는 절규와 같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독은 동독 정치지도자들에게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자유선거를 실시해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합법적인 권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득했고 국민의 힘을 두려워한 지도부는 1990년 3월 18일 자유총선 실시하게 되었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권력은 국민을 두려워 한다. 임기가 지나면 국민에 의해 권력이 상실되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민주적 권력은 모든 통일논의의 주체로서 정당하게 권력을 위임받게 되며 이때부터 진정한 통일협상이 가능하다.


2. 북한경제회복의 전제


제도통합에서의 핵심은 경제통합이고 경제통합의 핵심은 북한경제재건이다.


북한 경제재건은 민주적 권력창출과 더불어 남북 사회통합의 핵심이다. 북한경제재건의 두 축은 화폐통합과 인민재산의 사유화이다. 화폐통합은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핵심과제의 하나로 주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만 감당하고 있는 사회주의 화폐를 시장경제의 윤활유로서의 화폐로 대체하는 것인 반면 사유화는 공동소유라는 명목 하에 당이 독점하고 있던 재산을 민간에게 재분배하는 것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화폐를 대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남한과의 화폐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즉 남한의 원화를 북한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통합 


화폐통합은 남북한 화폐의 교환비율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독일의 경우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됐던 사안이 화폐통합을 둘러싼 교환비율이었고 경제전문가들은 동독 마르크와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동독의 산업은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대량실업을 불러왔다는 비판이다. 이에 반해 정치권에서는 화폐통합 과정에서 경제적 입장만 고려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통일과 함께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결핍한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공산독재에 저항한 동독주민들에게 서독 마르크화로 보상해야 했다는 주장이다.(89년 가을 호네커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시민의 힘은 통일에 대한 요구와 함께 서독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서독으로의 여행이 자유롭게 된 상황 속에서도 고향을 등지고 서독으로의 이주를 원했다. 동독인들은 “Wenn Deutsche Mark nicht zu uns kommt, dann kommen wir zur Deutschen Mark 만약 서독의 마르크화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마르크화를 찾아가겠다" 며 반세기 동안 경제적 결핍에 시달려온 과거를 보상받기를 원했다. 서독 정부는 대규모 엑소더스를 막기 위한 조치로 화폐통합 등 긴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적으로 동서독 간 화폐통합 시 교환비율과 사례 (실질가치 교환비율 4:1)를 살펴보기로 하자. 동서독 화폐통합은 1990년 5월 18일 체결한 경제, 화폐, 사회통합에 관한 협약을 근거로 한다. 그 내용은

첫째, 동독시민은 1인당 6,000 마르크까지 1:1의 환율로 교환할 수 있고, 6,000 마르크를 초과하는 금액은 2:1로 교환한다.

둘째, 법인 및 기타 재산은 2:1의 환율을 적용한다.

셋째, 동독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연인이나 법인의 재상는 1989년 12월 31일 현재 합법적으로 등록된 재산에 한해서 2:1로 교환한다.

넷째, 그 밖의 모은 해외재산은 3:1로 교환한다.

다섯째, 동독의 외환관리법을 위반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교환이 불가능하다.


화폐통합은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북한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해 추진해야 한다. 물론 북한의 피폐한 경제상황과 산업의 황폐화가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지하자원과 북한 군수산업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북한의 대외부채 규모도 환율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사유화 


북한경제재건을 위한 두 번째 과제는 재산의 공동소유라는 명목 하에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는 인민재산을 대중에게 환원해 시장경제 체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독일에서 이일을 담당했던 기관이 바로 트로이한트(Treuhand)였다. 통일 후 트로이한트는 동독 내 모든 재산(부동산, 기업 등)을 관할하고 이 재산들을 적당한 투자자들을 찾아내 판매하는 일을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동독에 존재하고 있던 8천5백여개의 기업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은 이 기업의 주된 업무였다.


사유화는 구체적으로 당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민간에게 이양해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민재산의 범위가 기업연합소에서 부터 토지 및 농지, 임야지를 포함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생산의 주체인 기업을 포함하고 있어 북한의 사유화 작업은 북한 경제재건의 핵심이자 남북경제통합의 가장 핵심적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남북간 경제통합은 기업의 사유화 작업의 성공여부에 결정적으로 달려있다. 또한 이 사유화 작업은 독일의 경우에서도 드러나듯이 작업의 양적 질적 규모로 보나 사유화의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 정도로 보나 통합과정 속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야할 사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상황 속에서 사유화 작업에 대한 논의는 사유화 개념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져야 한다. 영어로 privatization (독일어 Privatisierung)로 표기되는 이 개념은 일반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경제적 효율를 극대화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동서독 통일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국가가 관리하고 있던 인민재산을 민간인들에게 이양시켜 사회주의 체제에 종지부를 긋고 사유재산권을 제도화함으로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사유화 작업은 이미 그 일의 양적․질적 규모로 보아 상당한 갈등과 혼란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인민재산이라는 명목하에 당이 관리하던 재산을 민간에게 이양해 북한 공산세력들의 권력기반을 해체하는 과정인 사유화 작업에 대해 실질적인 권력을 주무르던 군부나 당 핵심세력들의 반발이 적지않을 것이다. 동독 사유화 담당기관을 실질적으로 맡았던 로베더(Rohwedder) 초대청장의 암살사건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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