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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44: “통일, 그 인간과 제도의 드라마” 韓․獨 학술심포지엄에 대해

박상봉 박사 2007. 4. 19. 11:56

해설44: “통일, 그 인간과 제도의 드라마” 韓․獨 학술심포지엄에 대해


2007년 4월 18일 연세대 알렌관에서 한독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조선일보는 이 심포지엄의 결론을 “자본주의 경쟁에 노출된 동독인들 생존불안 등 심리적 발달장애 생겨”라는 머리기사로 대변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영국 런던대 의대 프리베 교수, 할레 디아코니 병원 정신과 한스 요하임 마츠(Hans Joachim Maatz) 박사 그리고 연세대 의대 전우택 교수 등이 주제 발표를 맡았다.


해설: 우리사회에서 개최되는 독일통일 관련 학술회의 대부분의 주제는 독일이 통일 후 겪는 후유증과 부작용에 관한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던 동독인이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에서 겪는 어려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우리는 밥상도 차리지 못한 형편이지만 독일은 밥상 앞에서 반찬투정하는 격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일한 분단국가로 통일 이후 발생하는 체제관련 문제점에 민감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식의 반복은 통일을 감당해야할 우리의 미래에 ‘약’보다는 ‘독(毒)’이 된다. - 밥상도 차리지 못하고 상을 물리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독일통일은 부정적 결과 보다 긍정적 성과가 몇 배 크기 때문이다.

1천8백만 동독인들이 자유를 되찾고 절대적 빈곤에서 해방되었다. 동독 공산체제 하에서 좌절하고 절망했던 소외계층들과 젊은 청소년들이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만끽하고 있다. 어둠과 갈탄 오염에 쾌쾌하던 동독 마을들은 회색 빛을 청산해 가고 있다. 건물이 들어서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동베를린 중심가에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유럽 본거지를 주둔시키고 사이렌과 정적 소리, 일부 공산당 간부들이 차 소리가 주류를 이루던 운터 덴 린덴 거리(Unter den Linden)는 이제 독일에서 가장 활력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베를린 장벽은 없어졌지만 새로 생겨난 ‘머리 속 장벽 Mauer im Kopf’이 동서독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다”. “서독인이 동독인을 깔보고 있으며 동독인은 스스로 이등국민으로 생각한다”. “서독은 통일 후 수백억 달러를 동독에 퍼붓고 있어도 아직도 갈 길이 멀다”와 같은 류의 이야기들과는 다르다. 


우리사회 통일정책의 가장 큰 실패는 우리의 머리에서 통일의 자신감을 사라지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독일이 통일 후 이루어낸 것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 거리는 알아보려 하지도 못하고 독일 언론들이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해 쏟아내는 보도에 호들갑을 떨며 독일통일의 전문가 인양 하는 것이야 말로 본인은 물론이고 한반도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이 이 경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구더기를 보고 놀라고 있지만 독일 통일이 이루어낸 장맛은 과연 보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마치 회사도 차리기 전에 노조를 거론하고 춘투(春鬪)를 걱정하는 격이다. 


둘째, 한반도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기회이다.

흔히 통일은 늦을수록 좋다는 전문가들이 있다. 바른 문장이지만 내용은 틀렸다. 이들의 주장은 아직 통일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독일은 예상치 못한 통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 자체를 두고 반대했던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독일인들에게 통일은 한결같은 염원이었지만 통일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던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통일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역학 구조가 독일 통일을 가로 막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통일 불가론의 대세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한 것이 동독 내에서 불같이 일어났던 월요데모와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사회를 경유한 탈출행렬이었다. 모두가 통일을 막아도 동독인들이 몸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데 이를 누가 막을 수 있느냐 라는 반문이었다. 이는 통일이 선택이 아니라 역사가 부여하는 기회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이면에 북한이나 중국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중화주의가 동북아 새로운 패권주의로 부활되는 것은 아닌지,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복귀시키고 향후 북한 지역을 속국화 하려는 속셈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회사가 만들어지면 노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노조는 때로는 파업도 하고 협상도 해서 노조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도 만들기 전에 노조의 ‘춘투(春鬪)’를 거론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이번 심퍼지엄에 초청된 학자들이 의사나 정신의학과 교수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정 한반도 통일을 위해 돈과 지식과 지혜를 모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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