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나리오

남북통일의 비교우위(4)

박상봉 박사 2007. 1. 26. 21:03
 

남북통일의 비교우위(4)


독일통일이 한반도에 앞서 이루어진 것은 기적과도 같다. 왜냐하면 유럽 등 국제사회가 세계대전을 2차례나 일으킨 독일은 영원히 분단되어야 한다는 데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고 동서독 사이도 분단상황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모범적 국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만약에 가능하다면 동서독 통일은 한반도 통일보다 더 늦게 성사될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었다. 하지만 독일은 벌써 17년전에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독일통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는 통일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은 우리와 분단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차이로 별다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벗어야 한다. 통일의 요구는 반세기에 달하는 오랜 시간 이념의 차이로 갈라지고 이념의 차이로 인한 주민들의 삶의 풍요로움, 생활의 질적인 차이로부터 솟구치는 것으로 현재의 문제이다. 이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해가는 독일의 통일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연구해야할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다른 분단국의 통일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독일통일의 교훈(1)


독일통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동독인이 선택하고 서독인이 응답한 것”이다. 보다 정확히 설명한다면 동독인은 1989년 동독인의 대규모 탈출로 공산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행동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동독인은 탈출을 통해 억압과 공포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특히 만성적인 경제침체를 떠나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기회를 달라고 서독사회에 요구한 것이었고 서독인이 이런 요구를 긍정적으로 응답해 준 것이다.

독일이 공식적인 통일기념식 하루 전날 1990년 10월 2일 동베를린 샤우슈필하우스(Schauspielhaus)에서는 통일 전야제가 열렸다. 동서독의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참석했고 데트레트 카르스텐 로베더(동독경제 재건의 상징적 인물이다. 동독공산당의 재산을 실질적으로 해체시킨다는 이유로 이들이 지원하는 서독 내 반체제 테러단체였던 적군파RAF에 의해 90년 4월 자택에서 암살되고 말았다)의 두 남매도 참석했다. 이 전야제에서 호네커 퇴진 후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에 의해 동독 총리에 당선된 드 메지어(Lothar DeMaisier) 총리는 “이별을 슬픔을 의미하지 마는 오늘 동독과의 이별은 동독인에게는 기쁨이요 희망이다”라는 연설을 해 사람들의 감동을 주었고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를 연주해 통일의 기쁨을 음악에 담았다.

일부인사들이 흡수통일이라며 폄하하는 독일통일은 이렇듯 동독인의 행동과 서독인의 응답이 만들어낸 세기적 걸작이다. 굳이 흡수통일을 정의하자면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비참한 동독사회를 만들어놓은 시스템 보다는 자유롭게 풍요로운 서독의 시스템을 통일된 국가의 체제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통일은 탈출자에 대한 서독사회의 정책, 통일을 반대했던 유럽 및 국제사회를 향한 서독정부의 통일외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 후 어떤 정책들을 추진했고 어떤 시행착오들을 범했는가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과 주제들에 대해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교훈하고 있다. 이들을 잘 연구 분석해 대비한다면 남북통일은 분명 독일통일보다 엄청난 비교우위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1. 탈출자 대책

2. 통일에 대한 서독의 사회적 합의

3. 국제사회를 설득해낸 통일외교

4. 서독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5. 통일 후 정책적 시행착오

(계속)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