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나리오

독일통일의 교훈(3): 시행착오로부터 배워라

박상봉 박사 2007. 2. 12. 10:26
 

독일통일의 교훈(3): 시행착오로부터 배워라


동독인이 선택하고 서독인이 응답한 독일통일은 서독사회에 큰 희생을 강요했다. 동독 재건을 위해 매년 평균 1,500억 DM(대략 800억 달러)를 투입하고도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론이 들끓었고 헬무트 콜(Helmut Kohl) 수상은 국민들에게 “역사적으로 이런 통일의 전례가 있었더라면 정부는 많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고 국민들은 콜 정부를 이해해 주었다. 콜 수상은 16년간 수상직을 유지한 독일 최장수 총리이며 통일을 이루어낸 통일총리이다. - 시행착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후 지속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


독일통일은 역사가 부여한 선물이다. 콜 총리의 고백처럼 우리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통일의 전례를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교훈은 통일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교훈하고 있다.


1. 북한경제회복에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북한경제는 지난 90년대 중반 2백만명의 아사자를 불러일으킨 그 모습 그대로이다. 생산이 위축되고 명분 상의 완전고용은 국민을 배고픔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 에너지가 없어 어부는 고기잡이를 포기해야할 지경이고 평생 일해야 먹을 식량도 조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들로 산으로 먹을 만한 것들은 모조리 거둬가고 있다. 북한 곳곳에 방치된 벌거숭이 산의 모습이야말로 북한 경제상황을 그대로 대변한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그나마 가장 부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동독은 그 부의 실체는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이었다. 서독으로부터 동독으로 전해진 부의 이전은 정부, 기관, 단체는 물론이고 개인에서 개인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갔다. 이 돈으로 국경에 설치됐던 기관단총이 사라지고 서독의 부로 동서독 간의 민간차원 교류가 이어져 갔다.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해진 돈은 정부와 단체 차원에서 이전된 규모보다도 많았다.


통일 이후 정책의 핵심은 경제에 모아져야 한다. 정치적 자유와 인권 등 중요한 가치들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경제적 성과없는 정치적 요구는 미래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전제가 되지 않는 정치적 발전은 또 다른 허구일 수 있다. 따라서 통일정책은 몰락한 경제를 어떻게 재건하고 회복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경제회복의 핵심은 투자를 유치해 생산활동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일이다. 동독인들에게 통일은 시장경제라는 환경 속으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국가로부터 일자리가 주어지고 의식주가 보장되는 환경 속에 익숙했던 동독인들에게 시장경제라는 환경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통일 후 기업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남는 인력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서독인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과 박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내는 첩경이 바로 고용이다. 고용은 소득을 보장함과 동시에 시장경제에 대한 두려움을 일시에 극복해내도록 하는 가장 최선의 방안이다. 실직자에게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상의 사회보장책이다.


2. 정치적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고 이로부터 파생될 학문적, 경제적 포퓰리즘을 막아야 한다.


정치인들의 특징은 대중을 의식한 정책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국가를 위해 가야할 분명한 정책적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대중의 눈치를 보며 표를 저울질하는데 익숙하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정치적 포퓰리즘이다.

정치적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것은 통일과정에서 헬무트 콜 정부가 내건 장밋빛 전망들이다. 당시 콜 정부는 통일을 선택한 동독인들에게 통일과 함께 동독에는 서독이 누려온 자유와 풍요로움이 주어질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약속을 했고 이후 동독인의 불만은 이런 통일 초기의 약속과 무관하지 않았다.


통일 후 동독 재건을 위해 서독은 매년 평균 1,500억 DM이라는 재정을 투입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동독 이전금의 2/3나 되는 금액이 동독인들의 가계나 복지 비용으로 흘러들어갔고 투자를 위해 쓰인 금액은 총 이전금의 20% 미만이었다는 통계나 나오고 있다. 독일의 통일정책의 가장 큰 시행착오 중에 하나이다. 물론 갑작스런 통일로 충분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실책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통일 후 동독을 향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공약과 포퓰리즘이 이 과정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반성이다.

이런 정치적 포퓰리즘은 통일 후 치러진 수차례 선거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무엇보다도 구공산당 SED의 후신인 민사당(PDS)는 통일 후 드러나는 부작용을 집중 공략해 기존 정당을 비판하는 틈새전략을 구사해 구 동독 지역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구 동독 일부 주에서는 민사당이 제2당이 된 지역도 있고 주 정부 내각에 참여한 경우도 있다.


3.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목표를 설정해 추진해야 한다


흔히 사회통합이라하면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려 든다. 하지만 절대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도달하려 했던 사회주의는 극단적인 비효율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망하고 말았다.


남북 사회통합은 한반도 특수성을 고려해 정치적 혼란을 줄이고 경제적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사회통합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어야 한다. 남북 간의 제도적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는 완전한 사회통합은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회통합은 정치, 경제, 문화적 정책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념이다. 사회적 이상형을 선정해놓고 이를 모든 정책에 우선한다면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치 공장도 짓기 전에 노동조합을 세워 노동자 복지를 주장한다면 공장이 세워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의식주도 해결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문화생활과 문화적 인프라를 내세운다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남북한 사회통합은 이상적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려는 방식으로는 바람직 하지 않다. 이념과 체제가 갈린 채 반세기를 살아온 남북한 사회통합의 핵심과제는 두 체제간 상존하고 있는 차이를 좁히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제도와 가치는 상호의존적이다. 북한의 제도 하에서 비에 젖는 현수막의 김정일 초상화를 감싸는 기이한 행동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이렇듯 잘못된 체제와 제도를 바로 잡는 다면 일정한 시간이 경과된다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도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형성된 가치관, 인식, 규범 등 행동양식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서 만들어진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전혀 다르다.

제도통합과 가치통합은 상호의존적이지만 가치통합은 시간적으로 제도통합 보다는 장기적인 과제이다. 제도적 차이를 좁힘과 동시에 개선해야 하거나 폐기해야할 기형적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남한의 경우, 물질만능주의나 소비지상주의와 같은 천민자본주의의 모습들을 제거해야 하며 북한의 경우는 고질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만들어놓은 수동성, 무책임성, 공짜인생과 같은 비생산적 행동양식 이외에도 김정일 세습독재가 만들어놓은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조절해가는 정책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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