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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28 : 납북자 최욱일 31년만에 탈출(조선일보)에 대해

박상봉 박사 2007. 1. 4. 10:45
 

해설28 : 납북자 최욱일 31년만에 탈출(조선일보)에 대해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의 사무장 최욱일(67)씨가 31년여 만에 북한을 탈출했다. 최씨는 현재 중국 모처에서 한국 정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으나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에 대한 해설.


해설28: 지난 75년 34세의 젊은 최욱일씨, 그는 갓 태어난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와 함께 납북되자 산산히 부숴졌다. 이후 31년만에 최욱일씨는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현재 중국 내에 은신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정부의 대응은 이번에도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미온적이다.


1963년 서독의 내독성(통일부에 해당) 차관 루브비히 레링거(Ludwig Rehlinger)는 10만 DM을 가방에 넣고 동독을 찾았다. 동독에서 고통당하는 정치범을 석방시키기 위한 대장정이었다. 정치범 석방자 1호가 만들어졌고 이후 총 3만 3,755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이 서독 정부와 교회의 도움으로 서독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졌다. 끊임없이 서독행을 택하는 동독인들을 차단하기 위한 동독의 고육지책이었다. 불과 1달만에 쌓아올린 3.6 미터의 콩크리트 장벽은 해마다 20만명에 달하는 동독 탈출자들의 발을 묶어놓았다. 탈출행렬은 중단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유와 풍요로움을 원하는 동독인의 탈출은 콩크리트 장벽도 뚫었다. 물론 10분의 1로 줄어들긴 했어도 동독 탈출자는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목숨을 잃어도 때로는 반신불구가 되어도 동독인들의 서독행렬은 중단되지 않았다.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1961년 이후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년 평균 2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한 것이다.


1989년 9월 11일 헝가리가 대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고 동독인의 서독행을 허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10월 말까지 2만 4천여명의 동독인들이 이 곳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내렸다.

동독인의 탈출에 서독인이 응답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납북자와 탈북자의 고통이라는 눈에 보이는 인도적 배려는 모른 척 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북한의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다.

더욱이 최욱일 씨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납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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