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자유의 통로 헝가리

박상봉 박사 2006. 12. 13. 13:31
 

자유의 통로 헝가리

- 머지 않아 등장할 제2의 헝가리


해마다 6월 27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도시 소르폰에서는 1989년 헝가리가 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당시 양국의 외무장관이었던 기율라 호른(Gyula Horn)과 알로이스 모크(Alois Mock)가 참석해 동독을 떠난 동독인에게 서방으로의 통로를 열어 주었던 사건을 기념한다.

1989년 여름, 동독 사회는 정치적 억압과 빈곤으로 고통받아 오던 동독인들의 불만이 폭발해 혼란스러웠다. 서방세계의 자유와 경제적 풍요로움을 동경해오던 동독인들이 조직적으로 동독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8일 131명의 동독주민이 동베를린 소재 서독 대표부에 진입했고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 주재 서독대사관에는 연일 몰려드는 동독인으로 장사진이었다. 대사관의 뜰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텐트로 꽉 차 있었고 점점 증가하는 이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어 대사관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요구는 한결같이 서독행이었고 서독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해 탈출자들의 서독행을 보장해주었다.


이러한 동독 탈출의 절정은 8월 19일 헝가리 민주단체와 범유럽 유니온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도시 소프론(Sopron)에서 개최했던 한 행사장에서 벌어졌다. 행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동독 청년들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게 되었다.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이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탈출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독과 서독정부는 ‘20세기 최대의 외교전쟁’이라고 불리는 한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대상은 헝가리 정부였고 목표는 대(對) 오스트리아 국경의 개폐 여부였다. 탈출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동독의 호네커 총서기는 탈출 초기 “탈출자들은 서독정부의 흑색선전에 말려든 조국의 배반자라며 배반자는 조국을 떠나라”고 호기를 철회하고 헝가리가 서독행의 경유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호네커는 네메츠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 정부에 양국의 사회주의 유대를 강조하고 만약에 지속적으로 국경을 개방한다면 외교단절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동맹관계가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더불어 동독정부는 헝가리의 경유국인 폴란드, 체코의 국경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반해 서독정부는 자유를 찾아 고향도 등지고 탈출을 감행하는 동족을 돕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임을 설득하였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해 동독탈출자에게 자유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교전이 얼마나 치열하고 역사적이었는가는 당시 헝가리 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냈던 네메츠 총리와 호른 외무장관의 고백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고백은 당시 독일의 최대 시사주간지 데어슈피겔 지에 게재되었고 호른 외무장관은 무려 7, 8페이지에 달하는 당시의 역경의 순간들을 피력하였다.

결국 20세기 최대의 외교전은 생명과 자유, 인권을 중시하고 도덕적으로 월등한 서독의 승리로 끝났고 헝가리가 국경개방을 결정한 순간부터 두 달간 무려 2만4,000여 명의 동독인들이 자유세계의 품에 안겼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베를린 장벽은 철거되었고 통일이 길이 활짝 열렸다. 1989년 11월 9일의 일이었다. 탈북자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선사할 제2의 헝가리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IUED

 

     

 

◇지난 1989년 당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기율라 호른(GyulaHorn)과 알로이스 모크(Alois Mock)가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을 제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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