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개방과 공산독재는 반비례

박상봉 박사 2006. 12. 11. 11:15
 

개방과 공산독재는 반비례

- 상품진열대에는 빨강색 티셔츠만 가득


사회주의경제체제 하에서 투자는 기업의 결정사항이 아니다. 당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투자여부가 결정될 뿐이다. 이런 사회주의 사회의 불문율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이 동독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공급의 획일성이었다. 분단시절 동독을 왕래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느 계절 가게 진열대에는 온통 빨강색 티셔츠만 차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당의 지시에 따라 기업이 빨강색 만을 생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획일성 때문에 서독의 가족 친지들이 동독을 방문할 때 가져갔던 청바지와 각종 옷가지들은 동독 청소년들의 선호품 1순위였다.

기계, 설비, 장비 등 자본재의 낙후성에서도 이런 당의 독점체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던 국가는 당장의 효과가 없는 설비의 현대화나 장비의 교체 등 자본재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주의가 정책적으로 자급자족 경제를 지향하고 시장을 무시한 정치적 결정으로 제품의 질보다는 양이 우선시된 결과 낙후한 설비의 보완이나 대체는 마냥 지연되었다. 결국 대체비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덩이처럼 축적되었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것이다. 그 결과 이미 감각상각이 이루어졌어야 할 기계나 장비의 과도한 사용은 제조업체의 파손율을 높였다. 1975년에 48.1%에 달했던 파손율이 1989년에는 55.2%로 상승했다. 특히 건설업 부문에서의 파손율은 1975년에 52.9%이던 것이 1989년에는 68.6%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동독제품의 경쟁력은 끊임없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경쟁력도 눈에 띄게 저하됐고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시장경제로의 체제를 수용한 이후 동독 상품의 해외수요도 폭락하게 되었다.


동유럽 상호원조기구에 속해 서로 편의를 봐주던 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유발되었고 동독은 소련의 원유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상품들을 헐값에 해외시장에 내놓아야 했다. 동독 마르크 화의 가치가 급락해 갔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당의 노력도 가능하지 못했다. 동독시장은 점점 더 개방되어 갔고 개방될수록 당의 경제적 독점도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1970년에 동서독 간 환율이 1:1.7이었던 것이 1988년에는 1:4.4로 동독 마르크의 가치가 무려 3배 정도 하락했다.

동독의 경우 붕괴 직전인 1988년 현재 자본재의 평균 사용연한이 26년에 달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면 북한기업들의 기계, 설비, 장비 등 자본재의 낙후정도는 더욱 심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개방을 통해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지 않으면 북한경제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사는 북한의 개방과 공산정권의 권력은 반비례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독재자 김정일과 함께 개방을 추진하고 남북의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말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

IUED

 

     

◇작센 안할트 주에 위치한 동독 대표적인 Leuna (로이나)  화학공장에 통일후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도입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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