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노동과 사회주의 몰락

박상봉 박사 2006. 3. 3. 09:10
 

노동과 사회주의 몰락

Arbeit und Zusammenbruch des Sozialismus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원인에 대해 다양한 주장들이 있지만 노동의 주체로서 인간(Menschen)과 인적요소로부터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인간의 노동력에 임금이라는 가격을 매겨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케 하는 왜곡된 자본주의 사회가 오래 갈 수 없으며 노동을 계급투쟁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파업을 방관하는 포퓰리즘 사회도 좌초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왔고 이로 인한 생산성의 하락을 방조해왔다. 구조적 태업(Sabotage)이 일상화되었고 기업은 과대한 보호를 받으며 경쟁력을 상실해갔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사회주의적 행동원칙은 구호에 불과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인간의 이기주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허상이야말로 사회주의 몰락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임금은 단순한 노동의 댓가인가 ?


국가가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의 물질적 욕구에 대한 충족이다. 경제는 이런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활동이기도 하다. 또한 기업이라는 조직은 기업활동을 통해 재화를 생산해 물질적 욕구에 부응하는 아주 중요한 생산활동의 주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히 기업을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서만 파악하려는 기업 성악설은 옳은 주장이라고 볼수 없다. 

기업은 생산활동을 위해 자본, 원료, 노동이 요구되며 이를 생산의 삼요소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업의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인적요소에 관심이 새롭게 집중되고 있다.


1990년 동독의 서독편입과 사회주의의 몰락은 체제이론적 모순 이외에도 구성원의 행동양식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시각은 자본주의도 이 체제를 운영하는 구성원의 의식이나 행동이 체제와 조화되지 못할 때 붕괴된다는 역사적 경험과 학문적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남미 자본주의 국가의 몰락과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이 빈곤에서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증거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노동이라는 요소가 기업에 끼치는 영향력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든 상품에는 소위 가격이 정해져 있으며 가격을 매개로 다양한 재화가 시장을 통하여 교환되어 필요한 욕구에 충족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에도 가격이 정해지며 임금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반대급부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필요로하는 기업이나 고객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며 노동의 질에 따라 임금도 상이하다.


노동은 다른 생산요소인 원료와 자본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노동의 주체로서 인간은 사고와 학습의 능력이 있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행동양식이 바뀌고 변화한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의 형태 중 태업이라고 하는 노동행위를 살펴본다면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태업은 노동자가 노동행위는 하고 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노동의욕도 상실해 의식적으로 엉터리 노동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TV 수상기 속에서 빵봉지가 나오고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은 자동차가 생산되어 상품의 질을 터무니없이 저하시켰던 것도 태업의 결과인 셈이다.

오늘날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태업은 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가장 치료하기 힘든 노동투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태업은 노동자의 의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태업과 같은 의식적 노동행위가 지속된다는 것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기업을 파산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도 위기에 빠지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임금은 단순히 노동의 댓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구조적 태업


1986년 고르바쵸프에 의해 개혁 개방이 추진되면서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왜 몰락하고 말았는가 ?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지탱했던 두 가지 중요한 제도를 든다면 재산의 국유화와 경제활동의 통합수단으로서의 계획이라는 제도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부터 출발한 사회주의 이론은 자본주의 사회가 빈부의 격차, 노사갈등과 같은 문제점의 원인은 개인에게 재산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여 재산권을 사회에 귀속시킴으로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엄청난 실험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현실 사회주의에 있어서 공산당 독재체제의 지지 수단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지만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노력은 옳게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보다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무엇때문에 원래 지향한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말았는가 ? 

바로 이 질문 속에 소위 인간이라는 변수의 중요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재산이 공유화되어 있는 사회에서의 인간의 행동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재화는 사유재와 공공재로 나누어 지며 개인에게 소속된 주택이라든가 자동차, 토지 등이 사유재에 속한 것이며 도로 및 공원 등 공공시설이 공공재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은 무한할 정도로 큰 반면 공공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공공시설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거리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행위, 공원이 더럽혀지고 쉽게 오염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유재산을 원칙적으로 인정치 않았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공공재적 행동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 기업은 국가계획위원회에서 계획하여 지시한 생산량을 차질없이 수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기업 경영자는 가능한한 적은 양을 부과받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자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공공재의 성격인 기업의 시설물이라든가 원자재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니니 자원의 낭비가 생기게 되며 이런 노동자들의 노동행위는 상술한 태업의 개념 하에서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태업을 구조적으로 용납하고 있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몰락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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