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동서독 통일과 언론의 역할

박상봉 박사 2006. 3. 19. 18:40
 

동․서독 통일과 언론의 역할

Die Rolle der Presse bei der Wiedervereinigung Deutschlands


동독에 무혈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지배체제를 무너뜨린 동독시민들의 평화적 봉기는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독일의 분단 당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동서독 방송교류


동서독이 분단된 상황 속에서 양독의 언론은 서로 다른 원칙과 상황 속에서 발전해갔다. 동독은 분단 초기 부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강요하고 주입시키는 정치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였다. 동독 공산세력의 이러한 정치적 노력은 서독과의 보이지 않는 냉전 속에서 집요하게 추진되었다. 동독사회는 점점 정치화되어 갔으며 중립보도를 지향해야하는 언론도 당의 정책을 대변하는 관제언론으로 타락되어갔다. 언론이 일방적으로 국가의 꼭두각시 노릇을 계속함에 따라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1989년 동독주민들의 탈출과 저항운동이 이어지자 서서히 관제언론을 거부하고 나섰다. 여름부터 시작된 시위대의 구호 속에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빠지지 않았다.


서독은 자유로운 사회질서 속에서 경제성장과 안정을 이룰 수 있었고 언론의 힘도 커졌다. 70년대초 빌리 브란트 총리에 의해서 추진된 신동방정책은 전세계에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서독의 방송은 합법적으로 동독으로 송신되기 시작했다. 또한 서독언론의 대동독 정책 관련보도는 서독국민들로 부터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언론도 이와 같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보다 철저하고 전문적인 보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바 있다.

동서독 간 교류에는 서신교환, 청소년 상호방문, 가족 친지의 교환은 물론이고 방송교류도 포함되었다. 동독은 방송교류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진 곳을 홍보하고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방송교류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서독인들의 동독방송 시청율은 매우 낮았던 반면 많은 동독인들은 서독의 방송을 국제사회의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삼았다. 대다수 동독인들은 서독의 저녁 8시 뉴스를 빠짐없이 시청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양독의 통일원칙은 동독의 경우, 서독과 동등한 주권국가로 분단의 고착화에 관심을 두었던 반면, 서독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하나의 독일을 고수하며 막연하지만 미래에 있을 통일을 염두에 두었다. 동서독 언론보도도 이와 같은 통일원칙을 바탕 하에서 이루어져 동독의 관제언론에 비해 서독의 언론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보도를 해왔다는 사실도 통일과 관련하여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론과 베를린 장벽붕괴


국민으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서독언론은 89년 여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동독인들의 서방세계로의 탈출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헝가리가 대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는 과정에서 서독정부가 공식적으로 개입했다는 내용에서 부터 체코 주재 서독 대사관에 진입하여 서독으로의 망명을 요구하였던 수백명의 동독 탈출자들이 무사히 바이에른 주에 도착해 서독인들로 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 등 모든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하였다. 이러한 보도는 동독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전해졌으며 연일 계속되는 이와같은 보도에 고무되어 점점 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의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치닫자 호네커 정권은 무력으로 서독으로의 탈출을 저지하려는 결정을 내렸으나 방송 전파를 타고 철의 장막을 넘어 알려진 자유세계에 대한 소식들은 더 이상 총칼로 저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동독시민들의 반공산 투쟁은 더욱 거세지게 되었고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반체제 시위는 전국의 도시로 확산되었다. 89년 11월 동베를린에서 있었던 시위에는 수십만명이 참여해 당의 무력진압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다.

즉, 평소에 신뢰를 받아온 서독 언론의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는 서독은 물론이고 동독주민들에게 반공산 시위의 정당성과 통일의 염원에 불을 지폈다. 결국 사회주의 체제의 호네커 정권은 정권 유지의 합법성과 도덕성을 빼앗아 버렸다. 이로 인해 동독의 무혈혁명은 성공할 수가 있었고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었으며 동서독 통일이 가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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