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빌리 브란트와 노벨평화상

박상봉 박사 2006. 2. 16. 09:49
 

빌리 브란트와 노벨 평화상  


1971년 10월 24일 서독 연방하원 카이우베 폰 하셀 의장은 회의를 잠시 중단시키고 브란트 총리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이를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축하연설에서 폰 하셀 의장은 "타민족과의 화해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총리의 진실함과 열정에 존경심을 표하며 우리 모두는 비록 서로 정치적 입지는 다르다 해도 이 명예스런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입지를 떠나 여야가 한마음이 되어 한 정치인의 업적을 기리는 이러한 모습은 불신투성이의 정계에 훈훈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을 저지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해야 한다는 우리사회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노벨상이라고 하는 최고의 영예는 정말로 진실된 가치와 진리 편에 선 용기 있는 행동이나 상을 의식하지 않고 오랜 동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로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혹 누군가가 노벨상을 의식해 세계평화라고 하는 사건들을 인위적으로 연출해내서는 안되며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나마 지켜온 인류의 미래가 너무나도 암울하기 때문이다.


브란트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유는 크게 다음 두 가지 업적에 기인한다. 하나는 히틀러 나치정권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러한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독일민족을 대표해 전 세계인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는 점이다.

우선 나치정권의 만행을 인정한다는 마음속에서 인간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애착을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영원한 열등민족이라 무시하던 폴란드의 심장부에서 감히 무릎을 꿇는 용기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결단으로 유럽의 무분별한 민족주의는 설자리를 잃게되었고 민족 간 평화와 화해의 새장이 열리게 되었다.

브란트 총리의 또 다른 업적은 동서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인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들과의 관계개선을 꾀해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70년대의 냉전은 양 진영의 팽팽한 대립의 시대였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도 나름대로 발전과 번영의 가능성이 남아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무시와 배척은 유럽지역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업적으로 주어지는 노벨상을 두고 우리 사회는 묘한 갈등으로 고통을 겪은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을 두고 벌어졌던 불협화음이었다. 한편은 우리도 노벨상 수상국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고 다른 한편은 노벨상을 염두에 둔 연출된 대북화해정책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시각이다. 

양측의 주장이 나름대로 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실제로 남북화해라고 하는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화해의 모습은 있으나 그 내용은 너무나 빈약하다는 지적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의 현 체제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생명이 유린되고 있어도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한과의 화해 협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니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사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프랑스의 앙리 플라뇰이라는 젊은 국회의원이 연변지역을 다녀와서 "탈북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인데 지척에 있는 남한사람들은 동족이 이러한 짐승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데도 어찌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지" 반문했다고 한다. 인권유린을 부추키고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화해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지 곰곰히 검토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직전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국경없는 의사회였다. 이 단체는 전세계 분쟁지역에 파견되어 의료지원을 통해 고통받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단체이다. 또한 국경없는 의사회는 의료지원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북한정부에 항의해 북한에서 철수한 단체로도 잘알려져 있다.

 

동독과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다양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던 서독이 동독정부에 의해서 야기된 무수한 인권침해 사례에 적극 개입하여 고통받고 유린당하는 동독인들을 돌보았던 사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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