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탈북자, 잊혀진 동물

박상봉 박사 2006. 2. 15. 11:05
 

마음의 통일을 열며

탈북자, ‘잊혀진 동물’


‘잊혀진 동물’, 탈북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맞아죽고, 얼어죽고, 배고파 죽어도, 누구하나 돌보는 이없는 고향을 떠난 탈북자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은 이름을 잘지어야 하는 모양이다. 이름이 이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탈북자의 순례길은 고통과 위험이지만 이들의 실체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이들이 독일 땅에서만 태어났어도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유와 풍요로움의 땅에 안착했을 텐데, 어쩌다 한반도에 태어나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불의와 죄악에 저항하며 목숨걸고 국경을 넘은 이들이지만 이들을 반겨주는 손길은 그 어느 곳에도 발견할 수 없다. 대사관에 뛰어들고 몽골 국경을 헤매며 베트남, 캄보디아 땅에서 짐승처럼 내몰리며 자기 목숨을 지켜야 하는 이들은 이미 한국 땅에 와서도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기 일쑤다.


우리사회가 자의건 타의건 탈북자로부터 관심이 멀어져가고 있는 사이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자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남한 입국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 땅을 헤매고 있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중국공안과 북한의 추격조를 피해 몽골 국경을 넘던 탈북자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기도 하며 미얀마, 태국 국경을 방황하다 국경에서 체포되는 탈북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자의 실상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탈북자 문제의 현실이다.



1. 중국 내 탈북자의 삶


현재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방황하는 탈북자의 수는 조사기관에 따라 10만-30만명으로 추산된다. 탈북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불가능한 것은 북한을 비롯한 중국당국이 탈북자의 실체를 부인하고 있고 조사활동조차도 불허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관과 언론은 이런 불명확한 통계치를 빌미로 탈북자의 실체까지도 애써 부인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자세야말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탈북자 수가 1만이면 어떻고 단 1천명에 불과한 들 그것 때문에 과연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탈북자의 인권은 내팽겨져 지고 있고 그 정도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랄해 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탈북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탈북자는 김정일정권을 등진 자들이다.

아니 김정일정권이 먼저 이들을 버렸다. 자신은 상어지느러미 요리와 프랑스제 코냑을 즐기고 있으면서도 2백만이나 되는 주민을 굶주려 죽게했다. 배급이 끊겨 힘없고 능력없는 노인, 아이, 부녀자들이 가장 큰 희생을 당했다. 이제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북한을 떠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희망을 찾아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이 살길은 오로지 김정일 독재정권을 등지는 것이다.

2004년 4월 3일 새벽 만저우리 부근에서 몽골국경을 넘다 중국 공안의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체포되었다. 다행히 6명의 탈북자들은 몽골국경을 넘는데 성공했다. 체포된 17명의 어머니로 아들에 앞서 남한에 입북한 박모씨는 “배고픔과 타협할 수 없어 살길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오려고 한 것이 과연 죄입니까”, “이것이 어찌 죄가 되어 눈판에서 총에 맞아죽고, 얼어죽고, 길잃어 헤매다 짐승만도 못한 신세가 돼야 하느냐”며 이들의 북송만은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탈북자의 최대희망은 남한행이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남한이 유일한 희망이다. 중국에 은신하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아도 돌아갈 곳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들은 남한사회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 중국에 은둔해 살며 남한의 자유와 풍요로움에 대해 알게된 것이 고작이다.

이들에게 우리사회는 할일을 다했는 지 묻지않을 수 없다. 상처와 버림으로 모질어진 북한동포를 배척하며 의도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모른 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외면으로 그들의 희망이 좌절과 한으로 변해가고 있다.


탈북자들은 인권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현재 중국을 유리방항하는 탈북자들의 가장 큰 위협은 이들이 인권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중국이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탈북자 보호의무를 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탈북자들이 경제적 이유에서 불법이주한 범법자로 간주해 이들을 체포 강제송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정부의 태도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공공연히 탈북자들이 공개적으로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강제송환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인권운동가들의 탈북지원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반면 국제인권단체들은 탈북자의 실상을 조사해 이들의 난민여부를 판단해야할 필요를 제기하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노예처럼 끌려다니기도 하고 10대 소녀들이 매춘부로 끌려가고 여성들은 공포에 떨며 스스로 인신매매범을 찾기도 한다. 이런 극한상황 속에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와 '생명' 뿐이다.



2. 국제사회와 우리의 할일


북한당국은 탈북자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탈북사태의 원인이 바로 현 북한 김정일 독재체제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둘째, 탈북이 정권에 대한 가장 심각한 저항과 도전임에도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정부의 무조건적인 북한 편들기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고질화된 탈북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탈북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자 빠르게 변화하는 역사적 흐름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치 동독탈출이 공산체제를 종식시키고 독일에 통일의 선물을 선사했던 것처럼 오늘날 북한탈출은 단순히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차원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이를 읽고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사회의 몫이다. 정부가 나서지 못하면 민간단체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한반도에 벌어지는 이런 반교회적, 반성서적, 반인권적 처사에 침묵해서는 안된다.


동독의 교회는 끈질긴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고난받는자의 보루가 되었다. 독재정권의 비리에 저항하다 고통받는 자들을 감싸안았고 슈타지의 감시를 받으며 감옥에 버려진 수감자의 친구가 되어왔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한 생명을 보호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을 것이다. 교회가 경쟁적으로 김정일의 위장단체에 불과한 조그련과 타협하며 외형적인 교회를 지어주는 일보다 몇배 시급한 일들이 조․중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제 국제사회가 나서고 있다. 유엔과 유럽연합이 나서고 있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탈북자 문제 해결에 시동을 걸고있다. 이것은 탈북사태의 본질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이 아니라 인간을 동물시하고 인권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북한, 중국, 그리고 한국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길수가족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 사무실로 들어가 남한입국에 성공한 것은 일본의 북조선난민구원기금, 독일의 노베르트 폴러첸, 해외특파원 등이 개입해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를 시작으로 수십차례 해외공관을 통한 탈출이 이어졌고 국제사회의 언론들은 다투어 이를 전세계에 방영해왔다. 이제 탈북자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요현안이 되어 버렸고 국경없는 의사회, 국경없는 인권, 헬싱키 재단 등 유럽의 인권단체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인권단체들의 개입이 시작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북한자유법안이 머지 않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정부는 공식적으로 탈북자를 대규모로 수용할 것이고 아동들에 대한 입양도 추진될 것이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대북결의안이 통과된데 이어 유엔총회에서도 대북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고 이것은 국제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인권 조사를 위한 특별보고관이 임명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침해를 가장 우려스러운 문제로 인식하며 압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도 김정일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특별보고관 임명은 유엔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 ‘유엔의 특권 면제에 관한 1946년 협정’에 의해 외교사절과 동일한 예우를 받는다. 즉, 체포·구금을 당하지 않고, 휴대품을 압수 당하지 않으며, 말과 글 그리고 행동 때문에 소추 당하지 않고, 서류를 압수 당하지 않으며, 암호를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북한당국의 인권침해 사례가 보다 낱낱이 국제사회에 알려질 것이다.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정책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미 몇몇 국제인권단체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권을 방치하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열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자크 로케 IOC 위원장도 중국의 인권침해 사례가 지속될 경우 올림픽을 재고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우리사회도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민족공조라는 실체도 없는 명분에 이끌려 국제사회의 가치와 규범마저 망각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시간이 많지않다. 무엇보다도 탈북자를 돕다 중국에 수감 중인 인권운동가들 부터 도와주어야 한다. 현재 중국에는 최봉일목사, 오영필 비디오작가, 사업가 최영훈, 김희태, 이광일 씨 외에도 일본의 북조선난민구원기금의 노구치 다카유키 씨가 탈북자를 돕다 체포 구금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노구치 씨는 중국당국의 석방결정에도 스스로 석방을 거부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감자들에 대한 대응도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 지난 2002년 10월 30일 탈북자를 돕다 체포되었던 북조선난민구원기금의 가토 히로시 사무총장은 체포 1주일만에 석방되었지만 두리하나 선교회의 천기원 전도사는 동일한 이유로 체포되었지만 무려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벌써 2년 이상 수감 중인 최영훈 씨는 최근 성경책을 오려 만든 편지를 가족에게 전달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하루 8시간씩 17일간 필요한 글자를 성경에서 오려내 B5 복사용지 크기 2장의 편지를 만들어 이를 가족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내용 중에는 서울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한국교회와 민간단체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돕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도로 돕고, 물질로 돕고, 중국정부를 향해 그 부당성을 지적해야 한다. 이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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