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포스트냉전시대의 가치

박상봉 박사 2005. 10. 11. 21:16
 

포스트 냉전시대의 가치  


역사는 참으로 정직하다. 이 명제에서 정직은 순간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한 시대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의 결과가 진리에 부합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인간의 행태가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그때 그때의 상황논리에 도취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냉전은 체제간 반목과 대립을 의미한다. 이 어둡고 침울한 '냉전'이라는 개념이 퇴색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이다. 그 이전의 시기는 군비경쟁, 상호비방과 같은 투쟁적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체제간 대응 논리는 무한대로 발전해갔다. 냉전체제는 점점 고착화되어갔고 '철의 장막'으로 대변되는 공산권의 폐쇄와 단결은 결코 와해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견고한 철의 장막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계급을 없애고 모든 인민의 평등한 삶을 지향해온 사회주의가 인민의 배고픈 삶과 현실에 부딪히자 서서히 동요하게 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에 대한 국민의 이반을 제도적 틀 속으로 끌여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초래했고, 독일에는 통일이라고 하는 20세기 최대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냉전시대를 특징짓던 '계급'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퇴색되어 갔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르게 인식하고 한반도에서의 냉전체제를 종식시킨다는 의지로 줄곧 대북 포용정책을 구사하며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햇볕정책이라고 이름지어진 대북화해정책은 결국 김대중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였고 반세기만에 북한 땅을 밟은 관계자들은 감격과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반공 운운하는 사람은 구시대의 낡은 인물로 쉽게 평가되었고 진보라는 이름 하에 검증되지 않은 논리와 허구들이 마구잡이로 확산되었다. 포스트 냉전시대이니 무슨 문제냐는 반응들이었다. 젊은 청년 학생들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심어 주어야할 어른들도 권력에 눈치를 보며 그때 그때의 상황 논리로 청년 대학생들의 판단을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행동은 포스트 냉전시대의 의미를 망각한 행동이었고 포스트 냉전시대의 가치가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우매한 모습이었다. 냉전시대의 대표적인 개념이 '대립'이라고 한다면 포스트 냉전시대는 '소외'라는 개념으로 대표되고 있다. 더 이상 노사와 같은 계급 간의 갈등과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 소외된 실직자, 정보화 사회에서 소외된 컴맹, 친구로부터 소외된 왕따, 정상적인 인간관계로부터 소외된 장애인, 이들의 문제가 포스트 냉전시대를 특징지우는 것들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사회에서 소외라는 개념 하에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이 냉전 이후 시대의 이슈들이다. 인권침해, 환경파괴 등 21세기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즉 반공이라는 낡은 개념이 사라진 자리에 인권, 환경, 생명이란 단어들이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설사 반공이라는 낡은 개념으로부터 해방된다고 해도 새로운 21 세기에는 바로 이러한 인류보편적 가치와 같은 개념들에 의해 다시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수십만 탈북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의 실체는 아무리 이를 묻어두고 화해와 협력의 올가미로 씌워놓는다 해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화해와 협력의 시대이니 이들 고통의 주범인 김정일 정권과 무조건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논리는 위선일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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